언젠가부터 자취방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이 내키지 않게 되었다. 재워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정중히 거절했던 어느 날에, 자취방이라는 공간이 '나'라는 존재 자체가 되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내면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들어오지 마.
문 두드리지 마.
안쪽을 알려고 하지 마.
그러니까 나는,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선언한 뒤 마음의 문을 꼭꼭 닫고 책상 앞에 웅크리고 앉아 고작,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도 스무 살 무렵에는 이렇지 않았다. 더 협소했고 더 산만했던, 거의 '한 줌' 크기의 쪽방에도 아랑곳 않고 친구들의 출입을 기꺼이 허락했고, 자주 파티를 벌이곤 했다. 친구의 자취방에 예고 없이 쳐들어가는 것이 우정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혼자 산 시간이 누군가와 같이 산 시간만큼 길어지면서, 자취방은 굉장히 프라이빗한 공간이 되었다. 스무 살 때보다 면적은 (약소하게나마) 넓어졌지만, 손님을 위한 자리는 줄었다. 같은 잔을 두 개 사느니, 더 예쁜 잔을 하나만 사게 되었다. 오직 나의 편의로 배치된 모든 것을 치우고 정리해야만 누군가를 들일 수 있게 되었다. 집안의 물건을 사용하는 순서와 방식이 더 완고해졌고, 누구도 함부로 그 법칙을 깨뜨리지 않길 바랐다. 게다가 곳곳에는 내가 읽는 책이 널브러져 있으며 내가 쓰는 글과 내가 찍은 사진이 산발적으로 붙어 있으므로, 누군가가 들어온다는 것 자체만으로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의 내면세계를 활짝 열어 보이는 일에 다름없게 된 것이다.
'2인분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될 정도의 면적이었다면 나도 이 정도로 인색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1인분을 위한 자취방에서는, 상대가 오는 날에 맞춰서 민망한 빨래가 널려 있지 않도록 빨래 시기를 미리 조정해야 함은 물론이고, 수건이나 잠옷, 베개와 이불도 궁색하게나마 준비해둬야 한다. 냉장고 내부 사정 역시 볼품없는 바, 다음날 길을 나서는 이에게 뭘 먹여서 보내야 할지도 여간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더해 나는 현재 야간 생활자로서, 아침 기상이 필수 옵션으로 포함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재워달라는 그 부탁은 나에게는 곧 하룻밤을 지새워 달라고 요청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매우 얼빠진 상태로 살아가는 요즘의 나로서는 체력적으로 무리인 부분이었다.
가끔 'I'(MBTI)인 이들이 나의 내향성을 이해한다고 말할 때가 있는데, 수치가 거의 100% 육박하는 '슈퍼 빅 I'인 나에게 웬만한 I는 지나치게 사교적으로 보일 때가 많다. 나의 내향성은 수많은 사회생활을 거치면서 더 정교하게 발전하며 완벽하게 발현되었고, 소송과 사기 등 별별 세상 풍파를 겪은 뒤에는 최종적으로 대문을 걸어 잠그고 제 공간에 숨어드는 고독한 달팽이 같은 자아를 형성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솔직히, 까다롭다는 뜻이다. 물론 요즘 그만큼의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사정 때문에 어느 정도 친한 이라 하더라도 자취방을 오픈하는 것이 점점 꺼려지게 되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지나치게 사적인 공간에 초대된다는 것은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사람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라는 걸, 우리는 모두 안다. 나이가 들면서 나 자신의 고독을 수호하는 일에 좀 더 능숙해진 것, 그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와 달리 한 번도 자취를 해본 적 없는 데다 '열린 사람'이었던 친구가 생각 이상으로 서운해했다는 것이다. 물건을 만지는 것도 아니고 훔쳐가는 것도 아닌데…… 하고 끝말을 흐렸다. 너를 못 믿어서가 아닌데…… 하고 나도 끝말을 흐렸다. 우리는 둘 다 울먹울먹 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