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초고

너희가 결혼식장에 갈 때 우리는 장례식장에 가지

#일기

by 세라

사건을 함께 겪은 지 1년쯤 지났을까. 나는 비밀 일기장 뒤에 숨어서 썩은 홍합 같은 감정 찌꺼기만 토해내고 기억의 사체를 한쪽으로 치워뒀었는데, 친구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용기를 내어 연재를 하고 북토크를 열었다. 그 자리에 초대받아 갔다.

친구는 내가 계약금을 보내며 손을 와들와들 떨던 순간을 유독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물러터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기어이 겉으로 다 드러내고 만 그 순간이, 친구에게는 사고 장면으로 남아버린 것이다. 친구가 사람들 앞에서 고해하듯 말했다. 그때 나는 왜 떨리는 친구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을까. 그때 나는 친구의 고통을 다 이해했을까. 친구가 그놈들에게 어떤 괴롭힘을 당했는지 나는 다 알았을까. 혹시 나는 친구 뒤에 한 발짝 물러나 있었던 건 아닐까.


그때 내 존재는 불덩어리였다. 냉소마저 뜨거웠고, 슬픔마저 뜨거웠다. 친구는 아니었다. 친구의 분노와 슬픔은 어디로 갔는지, 나는 물어보지 않았었다. 친구는 내 어깨를 두드려 줬었다. 그런 친구의 어깨는, 아무도 두드려 주지 않았었다. 그런 친구가, 이 자리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목적은 내가 위로를 받고 갔으면 하는 거라고 말했다.




작년에 친구와 함께 전세 사기에 당했을 때 계약자 명의도 대출도 모두 내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계약금 몇 천만 원 역시 내 통장을 완전히 다 털어 송금했었다. 친구는 나중에 이사할 때 보증금을 받으면 절반을 준다고 했다. 처음부터 우리의 포지션은 달랐던 것이다. 그때 우린 그걸 몰랐다. 아니 알았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마도 다 이해하진 못했던 것 같다. 사기꾼들은 당연히, 계약서상 '본인'인 나를 공격해 왔다. 같은 전장에 함께 출전했지만 선봉장은 내가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관계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친구는 끝내 무표정해지기를 선택했다.


그때, 매일 잠도 자지 못하고 검은 얼굴과 빨간 눈으로 회사에 갔다. 울고, 울지 못하고, 싸우고, 싸우지 못하고, 미치고, 미치지 못한 날들. 새벽에 출근하고 야밤에 퇴근해서도 차마 자취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무 벤치에 녹아내리듯 앉아 새벽을 흘려보냈다. 전세 사기와는 별개로 쪽방을 가든 고시원을 가든 친구와는 찢어지기로 합의했다. 친구는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고 다음 집을 구했다 했다.


나는 이 일을 알릴 만한 가족이 없었다. 나는 다음 집을 구할 최소한의 계약금조차 없었다. 그래서 더 악착해지기를 선택했던 걸까. 전혀 모르는 부동산에 찾아가 도와달라고 읍소하고, 밤새 구청에 경찰에 법원에 국세청에 반복해서 신고하고, 하나의 사례로 실릴 뻔하다가 '최종 킬'된 언론사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업무 시간에 연락이 오는 사기꾼들과 틈틈이 죽도록 싸우고, 국회토론회에 낭독문을 기고하고…… 선봉장의 자리에는 일단 먼저 칼을 휘두르고 봐야 할 일이 많았다. 판단을 유보하며 시간을 벌 수가 없었다. 시간 벌기에 성공한 더 정교한 전투들조차도 점점 '부탁의 형태'가 되어갔다. 그때 나는 친구의 어깨를, 등을, 토닥여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친구 역시 피해자였다. 친구 역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까맣게 여위어 갔다. 그때 친구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몰라 줘도 나만큼은 알아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랬었다. 나는 내가 친구의 무엇을 알아주지 못했는지조차, 부끄럽게도, 몰랐다. 친구가 울먹이며 토해내기 전까지는. 너야말로 내 입장을 모르는 거 아니냐는 얄팍한 속마음은, 아마도 다 들켰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무른 마음을 감추는 데 소질이 없었으니까.


그랬던 친구가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그놈들이 너를 괴롭혔다고, 피를 뿌리며 싸운 건 거의 다 너라고.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전방이든 후방이든 우리는 함께 싸웠는데. 나 역시 말해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어서 놓친 것이 아니라, 그렇다 해도 놓친 것이 너무 많아서, 미안하다고. 친구야, 미안했어…… 그날 밤, 북토크가 끝난 뒤 친구는 소주를 샀고 나는 시장 트럭에서 귤 한 봉지를 사서 절반씩 나누었다. 야, 나 이거 완전 정확하게 나눴다? 딱 짝수로 들어 있었어! 소주 같은, 귤 같은 가난 속에서 우리는 웃었다, 손으로 입을 가리지 않고, 소근소근,




친구야, 자책하지 마, 그러지 마, 이제 정말 죄책감을 갖지 마. 우리 이렇게 추운 날에 마주 앉아 따뜻한 국물을 나눠 먹고 있잖아.




피해자가 피해자를 위로한다. 피해자만 피해자를 위로한다. 가해자들은 모두 탈출하고 없는 트라우마의 감옥에서, 찢어지고 발겨진 자들만 남아서, 서로를 축축하게 끌어안는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알려진 전세사기 피해자 중 한 명은 사실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누구보다 처절하게 싸우며, 억울함을 호소하며, 그 와중에도 생에 대한 강력한 의지로 N잡을 뛰다가 '과로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악착해지기에도, 무표정해지기에도 실패한 피해자들은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피해자가 한 명, 두 명, 세 명, 나오고 또 나왔다. 피해자가 피해자의 장례식장에 갈 때, 가해자의 프로필 사진은 꽃으로, 명품으로, 결혼식 사진으로 바뀌었다. 우리의 재난은 그들의 축복이 되었다. 개같이.


덮어두고 있던 걸 열어보니 아직 많은 것이 그대로라는 걸 알았다. 그나마 이렇게 말하고 쓸 수 있는 것도 우리의 경우가 수많은 운의 작용으로 '해결'된 특수하고도 유일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전세 사기라니, 이 무슨 희한한 재난인지, 도대체 무슨 외계어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렇게 끝이 난 줄 알았다. 이후 구조 조정이니 퇴사니 금리니 배신이니 하는 또 다른 현실적 재난에 휘말리며, 더러운 추억일랑 치워두고 있었다. 삶에서 해결해야 할 급한 숙제가 너무, 너무, 너무, 많았으므로.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아직도 미결이었나 보다. 나 역시 반년 넘게 쉬었는데 아직도 번아웃이다. 마음의 에너지를 너무 많이 끌어다 써버린 것 같다. 삶을 거의 다 살아버린 것 같은 이 초췌하고 황폐한 기분에서 대체로 벗어나지 못하겠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쓰면서, 또다시 기억하면서, 이 지난한 기억에서 시나브로 놓여날 수 있을 거라 믿어보기로, 한다. 믿어보기로, 라는 말을 쓰려고 하니 다시 손이 떨릴 것 같다. 우리가 기억한다고 그 사이코패스들의 발이 겨우 저리기나 할는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쓴 첫 번째이자 유일한 이유는 친구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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