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초고

필요한 겨울

#일기 #메모 #단상

by 세라

스산하고 적막한 겨울 오후, 책상 앞에 앉아 촛불을 켜고 책을 읽는다. 발이 차갑다. 휴대용 난로를 튼다. 탱탱한 주홍빛, 저건 내 방의 작은 태양이다. 고장 난 난로는 가장 강한 단계만 가동할 수 있다. 1단계에도 2단계에도 3단계에도 언제나 최선을 다해 뜨거운 그 이름, 난로. 난로의 이름은? 난로. 겉만 급속 가열된 살갗이 아슬하게 그을리기 직전, 난로를 끈다. 그 순간을 안다. 우리 사이의 가장 적절한 순간. 태양이 사라진다. 다시 춥다. 겨울이라는 감각이 찾아온다. 이런 적요함은 겨울만의 것이다. 난로를 껐다 켰다 한다. 무언가 왔다가 간다.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있다가 없다. 첫눈처럼. 눈 위의 발자국처럼. 아는 척하지 않는다. 반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좀 슬프거든. 봄을 생각하지 않는다. 겨울이니까 겨울만 생각한다.




목소리, 귀 기울여지지 않음. 이야기, 대문 밖으로 나가지 못함. 삑삑삑삑. 도어록을 터치하는 공포의 음정. 무언가가 어디로 들어가고 있음. 귀신 소리. 파티 음악. 클럽 리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가 없다잖아. 걍 춤이나 추고 노세요. 뚜뚜뚜. 팡. 세상은 귀가 없음. 나는 성대가 없음. 묵음. 무우우우우욱음. 묵음은 길었지. 긴 것은 뱀. 언젠가부터 나는 나를 뱀이라 여겼다. 발목 아래가 없는 듯 기어 다녔다. 있는데 없는 척했다. 있는 것을 들키지 않아야 했다. 스르르르. 쉬이이이. 그래. 그거야. 잘하고 있어.


쉿!




난로를 켠다. 가장 적절한 순간을 안다. 아주 잠깐, 일부러 순간을 놓친다. 불타라, 뱀. 내가 아는 가장 강력한 화력으로. 화라라락.






글을 쓸 때 냄새가 나게 하거나 감각이 만져지게 하도록 신경 쓴다. 말하자면 어떤 구체성이 누락되지 않도록. 이게 잘 되지 않을 때, 가끔 나에게 비유를 금지한다. 그럴 때 나는, 금주령을 선고받은 알콜중독자처럼 괴로워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하루를 보낼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방금 쓴 문장도 비유지만 이것은 체험에서 비롯된 사실이다. (다만 본인은 병리학적인 '알콜중독자'는 아닙니다. 그냥 좀 좋아하는 편입니다. 술버릇은 글 쓰고 그다음 날 후회하기.) 속에 있던 생각을 글로 돌돌돌 풀어내고 나면 이제 내가 더 이상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밀려든다. 여기까지가 나의 다다. 거기서부터 과거를 고치고 고치고 고친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면 전혀 다른 차원의 생각이 생겨난다. 쓴다. 어제를 잊는다. 글을 빚어내는 건 시간이다. 달리 말해, 또 하루 살아냈다는 느낌이다. 그러므로 글은 삶. 살아 있다는 감각. 살아가고 있다는 인식. 그것은 밥. 돈. 생활. 구체적인 절망. 글은 구름 위나 바다 너머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 이 지상에 있다. 내 오랜 친구 같은 검은 그림자 속에. 항상 내 곁에. 시는 대단한 데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책상을 치면서 술을 마신 다음날 그악한 숙취 속에, 돈을 빌리기 위해 친하지도 않은 이에게 전화를 걸고 비굴한 자세로 경청하는 긴 통화연결음 속에, 삶의 음습하고 축축한 곳마다 시가, 화사한 곰팡이처럼 피어난다. 삶이 괴로운 순간에는 굳이 비유하지 않아도 시가 쑤욱 태어난다. 불쾌하고 정력적인 이여, 정녕 시를 원하는가.




오늘은 정돈되지 않은 메모를 올린다. 어차피 내 글에는 정돈이랄 게 없다. 쓰는 내내 대체로 의식에 끌려 다닌다. 퇴고를 애써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처음과 별 다를 바 없는 상태임을 알게 된다. 글은 애초에 엉망이었고, 그것을 인정하지 못해 가능한 모든 연장을 동원해 죄고 박고 두드려 보다가, 체력이 모두 소진되어 이도 저도 아닌 못마땅한 상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결국의 순간에, 글이 완성된다. 그걸 완성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퇴고가 끝난다. 그렇게 해야만 끝에 다다른다. 그것은 문학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다. 그저 타고 남은 시간의 재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애써 퇴고를 하는 것은 오늘같이 생각을 휘휘 다 풀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물리적으로 인지 가능한 한 두 개의 소재 안에서 글을 매듭짓기 위함이다. 뭐라도 구실을 좀 했으면 하는 마음.)




몇 해 전, 사이코패스를 이웃으로 둔 적 있다. 그는 내가 층간 소음을 유발한다며 계약 기간 내내 보복용 우퍼 스피커를 설치해 낮에도 밤에도, 마치 정신 착란을 유발하는 광적인 소음을 번쩍번쩍 틀어댔다. (그런 용도의 플레이 리스트가 있다고 한다.) 그는 내가 집에 있을 때도 없을 때도 본인을 괴롭히는 건 오직 나라고 주장했다. 화장실을 사용하는 소리, 스위치를 똑딱 하는 소리, 화장실에서 나온 뒤 몇 걸음 뒤에 어느 위치에서 드라이기를 사용하는지, 책상과 침대의 방향까지, 자신은 모든 걸 낱낱이 알고 있다고 했다. 왜 나였는지 알 수 없다. 이유를 묻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그저 나는 바깥을 떠돌았다. 쉴 곳이 없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끔찍했고, 마침내 내가 사랑했던 모든 음악과 결별했다. 큭, 미러볼 같은 세상. 진짜 재미없네. 뉴스에 나오는 살인이 이렇게 일어나는 거구나. 누가 누구를? 혹시 내가 나를? 너도 너를? 그러고 보니 기억이 왜 여기까지 거슬러 온 건지. 별로 오고 싶은 곳은 아니었는데. 여긴 어디지? 아마도 뱀이 잉태된 곳. 고장 난 난로를 켜고 끄는 동안 시간의 태엽을 반대 방향으로 감은 것 같다. 앞으로 감아야 할 것을 뒤로 감은 순간. 당신도 그런 적 있나? 그런 실수를 한 적이 있나? 다만 이 순간의 촛불 하나가 나에게 필요한 것임을 안다. 알 수 없는 생각의 흐름을 그러려니 한다. 난로를 끈다. 춥다. 무언가 왔다가, 갔다. 다시, 겨울만 생각한다. 내게 필요한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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