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하늘. 구름 한 점. 손가락 사이로 스미는 햇싸라기. 봄이 오고 있었다. 아니, 봄은 이미 사람들이 걸음을 떼는 자리마다 잔흔을 남기고 있었다. 그러나 아스팔트 도로에 파근파근 묻어나는 나의 그것은, 분노였다. 아니, 분노인 줄 알았다.
돌아와라.
너를 부르고 또 부른 첩첩의 밤들, 의 응답 없음, 그것의 막막함. 너는 너에게 거리를 둘 수 있고 없고를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모르니. 그러나 고독! 그것은 오롯이 혼자 연습하는 것이다. 동행해 줄 수가 없는 것이야. 고독을 글로 쓰는 내가, 고독을 술로 마시는 내가, 고독을 숲으로 걷는 내가, 고독을 몸으로 겪는 너를 이해하기엔 너무도 부족했던 것이니.
며칠 만에 발견된 너는 약에 취해 있었고, 죽다 말고 지루하다는 듯이 몽롱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너는 짜증 나게도 나에게 미안해, 라고 말했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얼크러진 말들이 자취방의 시굼시굼한 공기를 타고 나의 두 귀로 흘러 들어왔다. 느낄 수 있었다. 들을 수 있었다. 네가 내 이름을 불렀다는 것. 그 웅얼거림이 정확히 두 번, 미안해, 였다는 것. 그러나 나는 침묵. 나는 미소 지음. 어쩔 줄 모를 때마다 침묵과 미소 지음으로 인하여 살아오면서 너무도 많은 손해를 보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억울하지 않아. 나는 간신하지 않게, 괜찮다, 라고 말했다. 간신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나는 너를 웃게 만들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사소한 실수 때문이었다. 이렇게 사소한 걸로 웃을 거면서 왜, 라고 나무랄 생각이 든 것은 나중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나는, 널 웃겨주기 위해 일부러 그런 거라고 허풍을 떨었다. 너는 또 웃었다. 나도 또 웃었다. 나는 곧 다시 보자고 말했고, 너는 끄덕였다. 그런데 왜,
왜그랬어왜그랬어어떻게그럴수가있어
기다리고, 찾아내고, 일으키고, 걷게 하고, 웃게 하고, 먹게 하고, 그리하여 네가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아니, 착각했다. 아! 어째서! 하얀 천장을 올려다보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분노 때문인지 절망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내 안에서 이상한 모음들이 와와 흘러나오는데, 나는 어쩔 줄을 몰라서 깊은 밤 책상 위에 엎드려 울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쩔 줄을 몰라서 혼자서 다시 침묵했다. 이후로 나는 질금질금 나눠 울었다. 먹다가 문득. 읽다가 문득. 걷다가 문득.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너는 증오하는 이들에게 영원한 상처를 주려 하였지만, 상처받는 이들은 차라리 우리였다. 너 없는 우리, 너 없이도 너를 사랑하는 우리였다. 확고한 믿음, 중단 없는 기다림, 침묵하는 안간힘…… 너를 향해 쏟아지는 마음 마음 마음…… 너는 이것이 보이지 않니. 어쩌면 좋단 말이야. 이게 왜 너한테만 안 보여. 어떻게 해야 되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친구의 마음을 돌릴 수 있습니까. 도와주십시오. 방법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까.
친구야 돌아와라, 그쪽이 아니다. 이쪽이다. 지금 너는 무엇을 보고 있니. 어디를 헤매고 있어. 내가 여기서 네 이름을 부르고 있는데. 간신히 간신히 기도하고 있는데. 살자, 우리 살자, 살아보기로 했잖아.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말에 어떻게 그렇게 큰 위로를 줄 수가 있냐고 호들갑을 떨 때는 언제고! 돌아와, 또 웃게 해 줄 테니까. 너의 작은 웅얼거림도 받아 적을 테니까. 나도 나의 고독을 지키며 여기 있을 거니까. 나는 악착도 없이 계속 살아갈 거니까…… 이쪽으로 와. 봄이 오고 있어. 여기 햇살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