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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Nov 12. 2024

나도 '마지막'이 갖고 싶었어

상담일기-6회차

벌써 6회 차, 마지막 날이었다. 매 회 50분은 리듬상 너무 짧게 느껴졌다.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어하는 나 같이 폐쇄적인 사람에게는 이제 좀 입이 트일까 싶으면 끝나는 러닝 타임이었다. 자비를 내고 연장하기에는 내 삶의 채무가 너무 많았다. 그런데 내가 배정받은 상담 센터가 (서울시는 물론) 보건소에서 주관하는 상담 프로그램에도 해당되어서, 그쪽으로 지원을 연장할 수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됐다.




보건소에 들러 다시 한번 상담 프로그램을 신청하며, 그곳의 절차대로 개인 면담 시간을 가졌다. 면담실. 기분이 들끓는다고, 우울하다고, 죽음의 충동을 느낀다고 대답해야 하는 곳. 사실은 들끓을 기분조차 없고, 코드 뽑힌 우울이야말로 나의 가장 평정한 기분이며, 죽을 용기 같은 건 책정된 바 없는데.


지원자의 정신상 결점을 취재하고 보고서로 정리해 올려야 하는 공무원 앞에서, 나는 태연하게 알코올 중독과 불면증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거기에 없었다. 마치 유체 이탈하듯 상담실을 빠져나간 또 다른 내가 저 멀리서 이 우스운 장면을 바라보며, 밀실의 배역을 향해 악마처럼 속삭였다.


살면서 언젠가는 네가 이런 곳에 오게 될 줄 알았지. 큭, 널 기다리고 있었어. 어때, 내 작품이 마음에 드니.




자신에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면 좀 더 정확하고 내실 있는 상담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6회 내내 갈피를 잡지 못했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이야기를 더듬더듬 파편적으로만 꺼낼 수 있었다. 결국 마지막 회차까지 나는 내 절망의 대주제를 파악하지 못했다. 비정규직, 열정 페이, 알바 사기, 전세 사기, 글쓰기, 알코올, 염세주의, 대인 기피 등등. 나의 우울이란 것은 이 모든 게 어지럽게 경련하는 환상곡 같았다. 모 수록곡이 각기 다른 에피소드로 발악하는.




오늘은 그중에서도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가슴속에 오래 묵혀둔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토해놓고 나서, 나는 매우 낯선 자각을 하게 되었다. 마음속에서 여읜지 오래인 원가족보다도 이 지대가 더 나의 약한 지반이었다는 것. 나는 연애를 많이 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별로 없는 편이지만(혼자만의 시간도 모자란다), 그래도 살아오면서 몇 명과는 깊은 관계를 가졌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그들은 주로 내가 극도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제멋대로 달려들었다가, 한 시절을 미쳐버리게 만들고는, 느닷없이 사라져 버리거 갑자기 이중인격자처럼 돌변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결코 이중인격자가 될 수 없을 만큼 사회성이 떨어지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현실 생활에서 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마음 속에서 나를 둘로 나누어야만 했다. 서로가 모순되는 나와 나로. 바로 거기서, 무의식적으로 자폐했던 기억들이 유년 시절의 깊은 상처처럼 줄줄이 걸려들었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연애란 언제나 하나의 '의료 사고'였다. 내 삶은 많은 시간 연고도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 비명을 지르고 있는 상태였고, 그들은 모두 일시적인 마취제였다. 아픈데, 너무 아픈데, 당장 눈앞에 주어진 마취제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아니, 제발 마취제를 놓아달라고 애걸복걸 구걸하거나 깽판 치지나 않을 수 있나. 어차피 이 세상에서 나를 돌봐줄 사람은 없다. 염세나 포기가 아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스스로 이고 지며 살아온 나로서는, 그게 말 그대로의 현실이었다. 어차피 늘 중환자실이었다. 아파서 약을 사러 갈 힘조차 없으면, 그 힘이 생길 때까지는 그저 내 형편없는 백혈구나 믿고 기다리며 허송세월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통과 울분으로 섬망 같은 상태에 휩싸여 있을 때 나는, 핏줄 속으로 침투하는 그 마취제들을 사랑이라, 벌꿀이라 믿었다. 달콤하기는 했지. 그러나 그 끝은 언제나 파멸이었다. 연애란 마약이고, 자해였다. 오직 나, 내가 내 멱살을 붙잡고 끌고가야 하는 엄하고 박한 세상을, 미친 듯이 헤쳐가다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너무 지친 내 손목을 놓아버리는 것. 그것이 죄다 내 실패한 연애의 역사였다.  




그래도 이야기를 하면서 울지는 않았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다가 문득 거울을 보는 순간, 무심한 눈물이 조막만큼 터져 나왔다.


친구와 함께 전세 사기를 당했을 때, 우리가 처한 암담함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을 때, 친구에게는 그래도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부모님이 있었다. 정말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면, 그래도 돌아갈 수 있는 고향, 마지막, 그런 게 있었다.


한 친구는 세상이 모두 비난할 만한 연애에 휘말렸을 때, 그 모든 치부를 알고도 자신의 편에서 변호해 줄 수 있는 아버지가 있었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그래, 내 딸 잘못한 거 맞지, 그런데 네 아들은? 왜 내 딸 잘못만 얘기하는데? 하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더 이상 이 지난한 세상을 견딜 수가 없어서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 이제 자신에게는 가족조차 없다고, 차라리 없느니 못하다고 비관하던 그 친구의 어머니는 나와 통화하며 소리 내어 우셨다. 그리고 다시 살아가기로 한 딸을 위해서 육십이 넘어서도 삼시세끼 정성으로 짓고 담고 얼려서 저 멀리 지방에서 보내주신다.


그들이 가진 '마지막'. 사실은 나도 부러웠던. 그러나 부러워하는 나를 내가 용납할 수 없었던.


나의 마지막은 늘 나뿐이었는데, 그 애는 내 사연을 들어주지도, 핏대를 세워주지도, 밥을 지어주지도 않은 채, 그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누가 누구를 위로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서로의 벼랑인 걸. 마지막의 마지막, 그것의 마지막, '매달리지 않겠다'는 매달 때문에 내 존재는 늘 불립문자였다. 나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에 완전하게 독립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밥 듯이 독립을 결심해야 했다. 도대체 어떻게 더? 더 이상 무엇으로부터? 그만, 제발 그만, 그만하기를 그만! 무것도 결심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읽거나 쓰지 않는 것, 나로부터 출가하기를 멈추는 것, 그게 정말이지, 되지가 않았던 것이다.




선생님이 물었다.


"그때의 나를 이해해 주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있긴 있어요, 그런데…"


내 안에는 나를 이해해 주고 싶은 내가 있고 나를 비난하는 내가 있는데, 후자의 세력이 너무도 막강한 것 같다. 그런데 어쩌지. 그 독재자는 사실은 세상에서 최고로 열심히 사는 자인 걸. 세상이 무어라든 그 생때같은 생활 아니었다면 내가 여기까지 생존할 있었을까.


때 너무도 마음, 그 자체라고 생각했던 문장이 다. 잠들지 못하던 숱한 밤에, 그 문장을 베개처럼 안고 흐느끼곤 다. 읽을 때마다 여전히, 현재의 마음으로 아프다. 문장을 끝으이만 오늘의 일기를 마친다.


'나는 낯선 행인에게 채찍으로 맞고 싶다고까지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단계를 거치는 사이에, 남에게 맞기보다 스스로 때려야 한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때리기보다 스스로 죽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나쓰메 소세키, <마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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