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일정이 바빠 하루만 주말으로 바꿨다. 오랜만의 휴일에 곧장 무기력 상태에 빠져 5분씩 10분씩 알람을 맞추길 기어이 오후.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 창밖의 어지러운 생기에 뒤섞이는 일 자체가 저 세상 몽상 같았다. 가까스로 상담 센터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만 오늘의 할 일을 다 끝낸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말았다.
약 두 시간 전인, 오후 네 시경. 상담을 마치고 나왔다. 완연한 가을 오후였다. 눈가에는 잔여한 슬픔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하면 꼭 울게 된다. 퇴근 후 상담을 마치고 나오면 늘 어두웠는데, 낮의 조도와 색채가 생경했다. 밝고, 따스하고, 유유한 무언가가,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처럼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오늘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미주알고주알 기록하고 싶지는 않다. 꿈과 열정, 사랑, 신뢰, 그리고 먹고 자고 입는데 필요한 모든 것, 나의 자원이 완전히 바닥난 날들에 일어났던 여러 사건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온몸을 푸드덕대며 기억을 털어내려던 동물적인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시간은 여전히 그곳에 멈추어 있었고, 아무런 재해석을 얻지 못한 채 일상 속에서 시시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나는 여전히 나를 불신하고 있었으며, 한 시기의 끔찍한 권태와 비행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과거에 자꾸 매달리게 된다고 자책하기보다는, 과거의 내가 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 힘들었다고 여겨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어쩌면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매 순간 말을 걸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지겹다고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다그치고 조롱하며 강제 종료시켰던 이야기들이, 거기에 아직 웅크리고 있었던 걸까. 너무 무거우니 조금만 같이 들어달라고. 도와달라고.
나는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싫었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뻔한 자기합리화 같았고, 작은 위로에 쉽게 반응하는 내가 가증스러웠다. 인간의 마음 중에 가장 연약한 마음은 아마도 '위로받고 싶음' 아닐까. 과거의 내가 지금에게, 지금의 내가 그 모든 미래에게, 사실은 위로받고 싶어, 다 실수였어, 의 무한, 무한 위로의 지옥.
나는 나로부터 빠져나와야 했다. 대신 선생님이 그만큼 내 쪽으로 걸어와 갑자기 텅 빈 공간을 지지해 주었다. "생각해 보니 제가 그 상황이어도 그랬을 거 같아요. 어쩌면 더했을지도 몰라요." 나를 둘러싸고 있던 불행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타인의 상황을 바라보듯이 나를 바라봐 주고, 이해해 주고, 그리고 너무 비난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도중에 한 부분에서 마음이 동했다. 나는 그 문장에 실시간으로 밑줄을 그었고, 나와 걸으면서도 맥락 없이 곱씹었다. '나는 죽으나 사나 내 편'.
벚나무들의 상부에는 하루의 마지막 햇빛이 아득히 고여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면 나무들도 머리카락을 털어내듯 한껏 푸드덕거리겠지. 여남은 햇빛도, 지친 나뭇들잎도, 공중으로 산산이 흩어질 것이다. 그러고 나면 밤 같은 고독이 밀려올 것이다. 눈 앞에 느닷없이 검은 비가 내렸다. 익숙한 비문증이었다. 내 검은 시야의 배면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걸죽하게 물든 가을 벚나무들은 저토록 아름다운데. 저 장면이 혹시 화려한 꽃으로 길을 수놓던 봄의 배면은 아닐까, 그렇게 한순간을 붙잡아볼까, 그러나 다음 걸음에는 놓아주기로 한다. 다만 붙잡지 못하는 마음, 그 연약함, 도무지 알 수 없는 아름다움에 잠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