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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Oct 24. 2024

살리는 나, 방치한 나

상담일기-3회차

*내가 살고 싶은 삶?


가을비가 내리는 밤, 세 번째 만남이었다. 고백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메모해 가리라 다짐했건만 그 사이는 정말이지 잠잘 시간도 부족한 날들이었다. 토요일 하루만큼은 시간이 있었지만 자연 태와 관련해 신청한 강의가 있어 밖으로 나갔다. 그건 나의 소박한 열정이었다. 숲,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됐다.


"숲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어서요. 알고 나서 보면 좀 더 세심하게, 깊이 있게 볼 수 있거든요. 숲 해설사 같은 직업도 있지만 그건 제가 사람들 대하는 걸 어려워하고 언변이 변변찮아서 직업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2년 안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이것저것 배우려고 하고 있어요. 사실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요."


토요일에 만난 전나무에서는 은은한 오렌지 향기가 났다. 집에 돌아와서는 전화벨 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혼곤하게 잠들었고, 즉각 메모하지 못한 지식과 감정은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충분했다. 가시처럼 뾰족한 전나무 잎에서 달콤한 과육의 향기가 난다는 사실은 나만의 즐거운 비밀 같았고, 신비로운 오렌지 향기를 공감각적으로 떠올리는 것만으로 기분은 특별해졌다. 


(글과 달리) 더듬더듬 이어가는 내 이야기를 들어가던 선생님은 나에게 (지금까지 받은 인상으로는) 첫 번째로 굉장히 '유순한' 사람 같다고 하셨고, 두 번째로 끊임없이 '나를 살리고 있는' 사람 같다고 하셨다.


'유순한'. 그건 내가 남몰래 아껴왔던 단어이기 때문에 안면이 슬쩍 따뜻해졌다. 어떻게 그 버튼을 찾으신 걸까? 어쩌면 내가 읽기나 쓰기에 매달리는 이유 중 하나도 그것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유순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선생님은 내가 자신만의 건강한 방식으로 풀고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어떤 삶을 살고 싶어요?"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읽고 쓰고 산책하는 단순한 삶. (헨리 소로우까진 아니더라도, 메리 올리버 같은 삶을 살고 싶다.) 선생님은 이런 기질을 타고난 사람에게 그동안 살아온 억센 삶은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고 하셨다. 맞아요, 하지만…… "다들 그런 거잖아요?" (습관적인 부정 반응) 도시의 삶이 누구에게나 다 그런 것은 아닐 수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도시 특유의 활력과 소란한 낭만을 사랑하기도 하니까. 오히려 내가 소수자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나요?"


선생님은 삶에서 안정감을 주는 것들을 찾고, 안정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늘려가야 한다고 하셨다.


"잘 모르겠어요. 살면서 안정감을 느낀 적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 저에게 안정감을 주는지, 안정감이라는 게 뭔지조차 모르게 되어버렸어요."


"그러면 반대로 불안정하게 하는 건 뭔가요?"


"음…… 이런 말은 좀 웃기지만, 일단은 집세요. 고시원, 하숙방, 원룸, 전세사기, 이자 폭등…… 솔직히 전 억울했어요. 그냥 사람의 기본적인 거잖아요? 저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삶의 균형을 꾸려갈 만한 선택권 같은 건 허락되지 않았어요. 단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미친 듯이 발버둥 치는 삶이었어요. 앞으로도 그런 삶이 아닐 거라곤 도저히 생각 못하겠어요. 선생님, 그런데 이게 정상이에요? 사는 게 이렇게 어려워야 해요? 이 정도까지는 안 어려워도 되지 않아요?"


"도시에서의 삶은 저를 자꾸 나쁘게 만들거든요. (도시를 떠난다면 사람들과의 관계는요? 물론 아쉽고 외롭겠죠, 하지만 그건 최우선순위는 아니에요.) 피하지 않고 그 속에 사는 것 또한 수행이겠죠.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린 거라는 거 저도 알아요. 하지만 바로 곁에 있는 것들에게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게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자꾸 숲으로 가게 돼요. 곁을 착한 것들로 채우기 위해서요. 만약 책상 위에 꽃 한 송이를 올려둔다면 한 번이라도 더 꽃을 보고, 읽고,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올려두지 않았을 때보다는요. 그런 식으로 일상 속에서 숲(착함)과의 접촉면을 실제적으로 늘려가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끝낸 뒤에는 왠지 조금 허탈해졌다. 내가 안간힘으로 원했던 삶이란, 그저 내 삶의 책상 위에 꽃 한 송이를 올려두는 삶 아니었을까? 




*글쓰기



그러면 글쓰기는? 내가 원하는 삶이라고 대답했던, 한 문장의 거의 모든 것을 차지했던 그것은? 선생님은 글쓰기를 직업화할 순 없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거두하고 절미하며 거듭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그럼 그건 그냥 내 영혼의 휴식, 그 이상은 아니네요?"


"……부끄럽지만 그렇네요. 모르겠어요. 삶에 너무 깊이 절망했을 땐 일기 말곤 쓸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솔직히 그것보단 좀 더 중요해요. 저는 그냥…… 글쓰기를 좋아해요. 이건 그냥 계속하는 거예요."




*속상하다


선생님은 안정감의 기준은 주관적이라고 했다. 더 많은 빚을 지고도 안일하게 사는 사람들 이야기와 아이를 낳을 병원비조차 치를 수 없어 전전긍긍했던 자신의 과거사도 들려주셨다. 모든 걸 그만두고 지방으로 떠나는 선택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의외로 쉽게 그런 결정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 말에는 동의했지만 현실적으로 나는 좀 더 기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무턱대고 다락같이 큰 결정을 내리는 대신, 말도 안 되는 이자를 줄이기 위해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노력해 왔다. 그 빼곡한 사정과 지금의 상황을 듣고 나서는 선생님 또한 그저 무력한 표정으로 "속상하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백 번도 넘게 생각해 봤던 몇몇 해결책들을 제시해 본 뒤에 하신 말씀이었다.


속상하다…… 그거 말고 더 적절한 표현이 있었을까?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가난한 청년에게 이 사회는 참, 너무도, 그저 속상한 것이다.


그 말을 등대 삼게 될까 봐 조금 두려워지긴 했다. 그래도 잠시는 좋았다.


"선생님, 그래도 저 그저께 '사람'한테 빌린 돈은 다 갚았어요!"(기쁨)

"와, 정말 대단한데요?"(환한 표정)




*살리는 나 vs 방치한 나


요즘 나는 불안에 휩싸인 채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 나를 견인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나를 살리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살아남음' 한 푼을 벌기 위해서 불공정한 계약에 강제로 서명을 한 채 끌려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스스로의 결기로 시작하는 하루도 있고, 숙취와 불안감으로 미칠 것 같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지친 표정으로 버티는 하루도 있다. 하루하루를 천 원짜리 한 조각처럼 들었다 놨다 하면서.


"살리는 내가 나 같아요, 방치한 내가 나 같아요?"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만약 어떤 사람이 밖에서 친절하고 공손하게 행동하지만 집에서는 욕을 하고 패악을 부린다고 치자. 심리학에서는 이런 사람도 '친절하고 공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본다고 하셨다. 선한 씨앗이 하나라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씨앗 자체가 없다면 그 어떤 주사위를 뽑아도 절망의 랜덤값만 나올 테니.


"그러니까, 반대로는 안 보는 거네요?"


그렇다면 단 한 번이라도 삶의 지독한 악취에 감염되어 본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추락하고 부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닌가? 불쑥 튀어나간 질문이었다. 호기심에 가까운 심술 때문이었는지, 내겐 너무 당연한 절망 때문이었는지. 마음속으론 그 정도로 악의적이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왠지 짓궂게 말하게 되었다.




*비 내리듯이


선생님은 내가, 나를 살릴 수 있는 씨앗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말미에 가서 선생님은, 내가 대단하다고 말했던 선생님 자신보다 내가 더 용기 있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유순하면서도 용기 있다니. 여리면서도 강하다니.


덧붙여 삶은 갑자기 비가 내리듯 바뀔 수도 있는 거라고 하셨다. 오늘은 종일 비가 내렸고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비유가 좋았다. 갑자기 비 내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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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일정으로 시간이 늦어버렸다. 기억이 더 새어나가기 전에 파편적으로 써서 올려두는 일기.


*내 안의 유순함을 인정하기.


*남은 삶을 단정하지 말 것. 자꾸자꾸 마음 고쳐먹으면서. 매일 시심 되찾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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