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정상인이 심리 상담을 받아도 되는 걸까, 라는 상당히 비정상적인 걱정 속에서 퇴근 후 첫 상담에 갔다. 도착하니 선생님이 따뜻한 미소로 인사해 주셨다. 나도 따뜻한 미소로 반가움을 표하려 했는데, 이상하게 표정에 웃음이 잘 반영되지 않는 것 같았다. 뭐지, 이 삐걱거림은? 회사에서 너무 오늘치 표정을 다 사용했나?
시작에 앞서 인사를 나눈 뒤 비밀 보장 원칙과 예외의 경우를 설명해 주셨고, 나는 마치 수술대 위에 오르기 전 동의서를 쓰는 환자의 마음이 되었다. 오늘은 처음 만난 날이니만큼, 기본적인 인적 사항에 대해서 몇 가지 질문과 대답이 오갔고,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50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서 전체적으로 그냥 물 한 잔 얻어 마시고 나온 것 같기는 하다.
질문은 이런 것들이었다. 혼자 산지는 얼마나 됐는지,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교류하는 친구는 있는지, 연애는 하는지, 밥은 직접 해 먹는지, 요즘 재미있는 일은 뭐가 있는지 등등. 대답은 간단했다. 나는 스무 살 이후 경제적인 생활까지 포함하여 완전히 독립하였으며, 인생의 절반 가까이 혼자 산 탓에 같이 산다는 감각은 잘 기억나지 않으며, 가족들과는 거의 연락하지 않고 명절 때도 잘 가지 않으며, 교류하는 친구는 몇 명 있지만 누군가를 만나는 것보다는 혼자 있는 게 훨씬 좋고, 20대 때는 진지하게 연애를 한 적도 있지만 그 이후는 모조리 다 실패이며, 좋은 사람을 별로 만나보지 못했으며, 사느라 너무 바쁘고 밥은 거의 대충 사 먹는다.
그러고 나니 할 말이 없었다. 아, 재미있는 것? 재미있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아서 한참 동안 묵음이 흘렀다. "전 그냥 책 읽고 글 쓰고, 산책하는 게 좋아요. 그게 다예요. 누구를 만나는 건 음 그냥…… 피곤해요."
역시 글쓰기의 세계와 말하기의 세계는 너무도 다른 것이어서, 말로 내 얘기를 꺼내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대부분의 질문에 나는 눈알을 여기저기로 산만하게 굴리면서 "음……" 또는 "뭐라고 말해야 될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책 읽는 건 본인의 의지로, 하고 싶어서, 읽으면 행복하니까, 그래서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맞다! 맞아요, 라고 대답하고 나서는 행복하다는 말이 좀 별로인 것 같아 정정을 시도했다. "행복도 다양한 종류가 있잖아요, 저는 몰입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행복해서 행복인 것도 행복이지만, 고통스러운 것이나 절망적인 것도 즐거움의 한 종류니까요." 이 말은 자칫 미치광이처럼 보일 위험이 있었는데, 나는 책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고삐가 풀려서 이렇게까지 말하고 말았다. "저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독서를 하지 못하는 모든 시간을 '못 읽는 몇 장의 페이지'로 환산해서 생각하게 돼요." 아아, 나는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한두 달 전 상담 신청란에 내가 체크한 항목은 '우울'과 '불안', '의욕 없음'이었다. 나는 그것을 잊고 있었다. 그 사실을 다시 들었을 때, 왠지 남 얘기처럼 어색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되지. 마치 밖에 나갈 때 옷을 왜 입고 나가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했다. "의욕 없음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전 그냥 다 피곤하거든요……." 어렵사리 결심하고 나간 자리이니만큼 일부러 나를 감추려는 생각 같은 건 정말 없었고, 오히려 내친 김에 이것저것 다 고백해 보자 쪽에 가까웠는데, 나는 마치 아직 인간의 언어를 트지 못한 정글 소년처럼 의미 없이 웅얼대기만 했다. 어쩌면 난 그냥 오랜 천성대로 낯을 가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죽을 용기 같은 건 전혀 없는 사람이지만(이렇게 만사 피곤한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 일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 리 없다) '살고 싶지 않다'고는 자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되는 평범한 이야기들을 얼마든지 더 할 수도 있었지만, 왠지 그 이후에는 다시 입을 다물게 되었다. 아, 오늘 내가 회사에서 얼마나 동료들과 함께 잘 떠들고, 자발적으로 점심 약속을 다녀오고, 누가 보지 않아도 열심히 일하고, 상사와까지도 시시덕거리며 농담을 주고받았는지 보여줄 수만 있다면 나를 정상으로 생각해 줄텐데!
어느 시점부터 선생님은 자기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셨다. 가난하고 불행했던 어린 시절 가정사, 자신의 취미,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된 이유, 얼마 전 사기를 당하고 펑펑 울었던 경험 등등. 선생님은 어렸을 때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게 싫었고, 그래서 친구를 새로 사귀는 게 너무 귀찮았으며, 비가 올 때면 항상 우산 없이 비를 맞고 다녔다고 하셨다. 우산 이야기에 나는 너무도 슬퍼져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렇게 어린 애가, 우산도 없이 혼자 걸어다녔다니.
가족 관계를 꽤 많이 물어보신 것 같지만, 비록 내게 안락한 기억은 그다지 없고 불행한 편에 가깝기는 하지만, 그것은 이미 나와 너무 멀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정작 대답할 땐 한이 맺히기는커녕 거의 농담처럼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건 나의 일부이긴 하지만 나와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 같았다.
상담이 끝나가던 시간에 대뜸, 나에게 독서는 현실 도피라고 말씀하셨다. 인정? 인정!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인정했다. 그거야말로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 않았던가? 이어서 누구에게나 방어 기제와 도피 수단이 있으며 어떤 사람은 그것이 남을 해하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독서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며 심지어 유용한 것처럼 보인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좀 더 인상에 남는 말은 이것이었다. "어떤 엄마도 자기 아이가 방 안에서 책만 읽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밖에 나가서 뛰어놀기를 바란다."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남은 시간이 내가 '내뱉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상담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솔찬히 차가웠다. 속엣말은 나보다 선생님이 더 많이 꺼낸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말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게 더 편하고 익숙한 사람이라는 걸 눈치챘던 걸까? 내밀한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애꿎은 독서 근황만 억울하게 됐다. 책들아, 미안하다. 너희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문득 내가 꽤 문제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