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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의 힘

아마도 우린 행복하기 때문일 거야

by 세라
마지막으로 포옹을 했던 게 언제인가?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에 '포옹'은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우리나라는 포옹하는 문화가 익숙지 않다. 여행 중, 이에 대해 생각하게 한 순간이 있었다.




친구들과 문화체험으로 복지회관 비슷한 곳(Ayuntamiento)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동네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우리는 멕시코 노래와 춤, 공예 등을 배우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함께 '노래'를 배운 일이었다. 완전히 모르는 노래들인데, 그분들은 그저 가사가 인쇄된 종이만을 주시고는 무작정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이런 무지막지한 교수방법(?)이 있다니. 멜로디도 모르는 우리는 어물어물 가사만 눈으로 읽으며 거의 지어내서 불러야 했다. (아마 그때 음악을 껐다면 염불 외듯 중얼중얼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나이가 지긋하신데도, 모두 어린아이들처럼 질세라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셨다. 뭔가 '점잖은' 느낌의 우리 문화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신기하게도 한 곡을 마음대로 따라 부르다 보면 말미에 가서는 우리도 얼추 멜로디를 비슷하게 따라 부르고 있었다.


¡Viva, México!


노래를 부르며 가사의 후렴구마다 '비바, 메히꼬!'라는 추임새를 외쳤다. '비바'는 우리나라 말로는 '만세'와 비슷한 뜻이다. 그때 나를 포함해 스페인, 일본에서 온 친구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리듬에 맞춰서 흥겹게 ¡Viva, México!, ¡Viva, España!, ¡Viva, Japón!, ¡Viva, Corea!(멕시코 만세! 스페인 만세! 일본 만세! 한국 만세!)를 외쳐주셨다. 한 명이 선창을 하면 모두 다 같이 따라 외쳤다. 우리도 자연스럽게 그 화합의 대열에 동참했다. 복지회관은 순식간에 축제의 한 현장으로 탈바꿈한 것 같았다.


노래와 춤, 수공예를 배우고 난 뒤 다 함께


멕시코 노래들을 배우고 난 뒤,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환영하며 한명 한명 안아주셨다. 처음 만나 같이 노래를 불렀을 뿐인데, 마치 캠프파이어 마지막 날 같은 느낌이었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포옹의 물살이 이어졌다. 한명 한명 어찌나 꼬옥 안아주시던지. 하나의 포옹마다 깊은 정성이 담겨 있었다. 곳곳에서 그 정성이 오갔다. 마치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던 손자·손녀를 만나신 듯, 혹은 오랜 여행 끝에 그리워하던 가족을 만난 듯, 서른 명에 가까운 사람들은 작은 공간 안에서 서로서로를 끝없이 포옹했다.


I don't know why I'm crying


포옹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더니, 기어이 참기 힘들 정도가 된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반갑게 사를 하는데 눈물을 보일 순 없었으므로 나는 참고 있었다. 그러던 중 스페인에서 온 친구가 먼저 나를 발견했다. 그녀 또한 눈시울이 한껏 붉어져 있었다. 눈이 마주친 우리는 부끄러움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나에게 "너도 울고 있네"라고 했다. 나는 "나도 내가 왜 울고 있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 역시 눈물을 뚝 흘리면서 대답했다.


Maybe we are happy
아마도 우린 행복하기 때문일 거야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 한 켠에 결핍을 품고 산다. 그 고집스런 결핍을 채우는은 오래 된 염증을 치유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 같지만 사실 우리는, 그저 포옹 한 번으로도 서로의 빈 마음을 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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