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42
사회생활 15년 차지만 1년 차와 같은 직급으로 일하고 있다. 늘 0년 차였다. 그래야만 재취업할 수 있었던 불공평한 업계 속에서, 나는 덕분에 10살 넘게 차이 나는 동생들과 공평한 우정을 쌓아보기도 한다. 그 정도 나이차라면 보통 회사에서는 팀장과 직원 급의 차이도 충분히 될 수 있을 테지만, 여기선 같은 조건에 같이 힘없는…… 그냥 동료이자 언니다.
어느 날, 제법 편해진 동생 하나가 내게 진지한 이야기를 건넸다. "언니가 나보다 살면서 겪은 게 훨씬 더 많겠지만, 어린 게 주제넘는다 생각하지 말고 들어줘요. 내가 보기에 언니는 천성적으로 순하고, 여리고, 정이 많아요. 언니, 정을 줄여요.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안 해요. 지금보다 더 못되게 살아요. 언니가 지금 믿고 따르는 그 사람들조차 믿지 마요. 그 사람 되게 차가운 사람이야. 사람들한테 잘해주지 마세요."
그렇게 사람이 싫다고, 누구도 믿지 못한다고 밤마다 악착같이 써오던 나는, 순간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내 글쓰기는 고작 도피이자 자기부정이었나.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나 자신 아닌가.) 그 아이는 나와 10살 넘게 차이 나지만, 나와는 달리 매 순간 단호하고 대범하며 의사 표현이 확실한 아이였다. 내가 상처받지 않길 바란다며, 그가 내게 해 준 말들은 진심이었다. 옆에서 보고 있는 내 모습은 늘, 혼자 잘해주고 혼자 상처받는 것 같다고…….
-아니야, 잘못 봤어. 나는 사실 다른 사람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 나 하나 먹고살기도 바쁘거든.
-그렇지 않아요, 언니는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한텐 정성을 다하거든요.
내 마음은 불신과 불안으로 오랜 병이 들었는데,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은 그렇지 않다고 하네…… 나는 그 아이의 말대로 지금보다 더 차가운 사람이 되어야 할까. 그만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 그날 오후, 배고프단 말에 귤 반쪽을 나눠주는 내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아, 이 언니 안 되겠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어!
깔깔깔.
절레절레.
네 말이 맞아, 나도 내가 절레절레야.
어쩌겠어,
나는 그냥 이렇게 태어난 사람이야.
그래서 배신당하고 사기당하며, 많은 걸 삼키고 삼키며 살아왔지.
그런데도 나는 너에게 귤 반쪽을 건네주고 싶잖아……
나를 위해 그런 말들을 해주는 너야말로 참 다정하잖아.
10번이 넘는 이직의 세월 속에서 수많은 인연들이 스쳐간다. 계약이 끝나면 나는 떠나고, 이 자리에는 또 다른 사람이 들어올 것이다. 나보다 늦게 들어온 이들도 머지않아 떠날 것이다. 그 안에서 따뜻한 줄도 모르고 따뜻한 마음들이 있었노라고, 너에게도 나에게도 순진하고 어슬한 날들이 있었다고, 그리 기억하자.
먼 훗날……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