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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500일

잠시만 모락모락해도 될까요?

D-151

by 세라

금요일 퇴근길, 반찬 가게에 들렀다. 대도시의 달동네인 우리 동네에는 반찬 가게가 많다. 거기엔 밥도 있고, 국도 있고, 달도 있다.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AI같은 건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의 어머니들과 할머니들이 거기에 다 있다. 장은 한 달 내내 지저분한 보름달.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지 못해 눈치를 보다가 슬몃 나와버리곤 하던 반찬 가게. 나는 무엇이 먹고 싶은 거지? 예, 때로는 어렵더군요…… 그래도 난 가끔은 내 돈 내고 사 갑니다. 훔쳐간 적은 없습니다. 쟁그랑쟁그랑…… 염치없이 종소리만 남겨놓고 나가는 저를, 예, 부디 미워하지는 말아주시길. 이런 치도 먹고는 살아야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인 우리네 계급이 유지되지 않겠습니까? (사실 저 종소리 때문에 너무 부끄러워요…… 특별히 반가운 손님이 없다면 저 종을 좀 떼 주시면 안 될까요?……) 우연히 두부구이가 눈에 띄었다. 갓 구워진 듯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른 반찬과 달리 아직 뚜껑이 덮이지도 않았다. 당근과 대파와 양파가 쫑쫑 썰린 채 계란물과 함께 예쁘게 구워져 있었다. 예쁘다…… 너무 예쁘구나…… 홀린 듯 그것을 사 왔다. 6500원. 그 돈이면 김밥이 두 줄인데. 그것은 한때 내 이틀 치 식량. 나여, 그 모든 삶의 잉여를 감당할 만큼 두부구이를 좋아했던가? 아니, 나 그런 적 없어요, 나…… 모락모락, 그 풍경이 좋았나 봐요. 모락모락모락…… 그 온도가 좋았나 봐요…… 그래요, 오늘 밤 나는 모락모락 술을 마시고 있어요. 그래요, 이것이 오늘 하루 내가 하고 싶었던 단 하나의 이야기. 다른 얘기는? 그것으로 되었다고…… 예, 그러니까 나 잠시만…… 모락모락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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