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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르고 싶은 밤

Taxco#8 호스텔

by 세라

Taxco에서 내가 머무른 호스텔은 내 멕시코 여행을 통틀어 Top 3 안에 든다고 생각하는 곳인데, 이 도시의 밤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호스텔을 잘 고른 덕분이 컸다.


여행하며 숙박 정보를 제대로 정리해둔 것은 별로 없지만 여기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오고 싶어서 적어두었다. 이름은 Hostel Casa Taxco이다.




적당히 아담하고 조용한 거실. 가정집 같은 분위기. 규모는 크지 않은데, 그래서 더 좋았다. 큰 규모의 호스텔은 여행자들이 북적이는 만큼 소란스럽기도 하고, 점점 프랜차이즈화 되면서 서비스도 인간미가 떨어졌다. 여기에선 조식이나 빨래 서비스 같은 건 없었지만 풍경이 탁 트인 옥상이 있었고, 편안하고 예쁜 거실과 테라스가 있었고, 도미토리와 화장실 모두 깨끗하고 넓어서 쓰기 편리했다. 1박에 170페소(약 10800원)로 가격도 적당했다.


나는 호스텔에서 조식으로 나오는 토스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있으면 먹긴 하지만, 아스러운(?) 입맛 때문에 눈뜨자마자 식빵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국물이 짱이지..) 그래서 조식이 안 나오는 건 별로 개의치 않았다. 바로 앞에 있는 시장에 가서 과일과 재료를 몇 개 사 와서 간단히 만들어 먹었다. 또 많은 경우 도미토리는 4명이나 6명이 꽉 차도록 방을 만들어놓아서 짐을 펼쳐놓기 미안한 경우가 많은데 여긴 방이 충분히 널찍했다. 붙박이 쪽 미닫이문을 열면 옷을 걸고 짐을 둘 수 있는 공간도 여유 있게 있었고, 좁은 공간에 2층 침대들을 채워 놓은 게 아니라 1층 침대들을 방에다 펼쳐놓았다. 아침에는 창문으로 햇볕도 잘 들어오고 환기도 잘 되었다. 내가 있을 때는 하루 빼고는 다른 여행자도 없어서 그야말로 프리덤이었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 예상치 못한 일로 예약 날짜에 오지 못했다. 전화로 예약 날짜들을 하루씩 미뤄서 묵으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그렇게 해준다고 하셨다. 보통 당일 취소나 변경은 아예 불가능하거나 페널티를 물어야 하는데, 여긴 규모가 크지 않아서 그런지 나의 걱정이 무심할 만큼 ¿Por qué no?(=why not?)라는 반응이었다. 무심한 듯 친절한 주인아주머니도 좋았다.



위의 테라스 사진을 찍은 것은 Taxco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는데 고전 로맨스에 나올 법한 테라스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묵는 동안 거실에서 밤늦게까지 탭북에다 글을 끄적거리다 보면 12시를 훌쩍 넘기곤 했다. 그러면 내가 제일 마지막에 부엌과 거실의 불을 끄고 방에 들어갔다. 그래서 더욱더, 잠시 비용을 지불하고 빌려 쓰는 장소가 아니라 며칠 신세 지고 가는 조용한 가정집 같았다.


테라스에서는 Taxco의 오밀조밀한 골목길이 좌우로 시원하게 내려다보였고, 몽환적인 등불 아래 서 있다 보면 작은 창문에서 노래하는 마리아치라도 된 것 같았다. 센뜨로까지도 3분밖에 안 걸려서 밤마다 늦은 시간에도 걱정 없이 축제를 구경하고 왔다.


마지막 밤에는 넓은 거실에서 혼자 앉아 사진을 정리하며 위스키를 마셨다. 이 무렵에 나는 Oxxo에서 파는 캔 위스키에 푹 빠져 있었다. 한국에서는 위스키를 캔으로 파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멕시코에서는 편의점마다 다 있었다. 맥주는 Corona, XX(Dos equis), Sol, Indio, Bohemian, Tecate, Modelo 등을 본 것 같다. (보헤미안 흑맥이 나의 최애였다!) 맥주 자체는 역시 유럽이 더 맛있는 것 같지만 바에서 라임, 소금 등 미첼라다와 함께 마시는 것이 멕시코 특유의 매력이었고 뭐니 뭐니 해도 메스깔, 데낄라 같은 것들이 훨씬 다양했다.


출처:구글

이 캔 위스키들, 저 중에서도 특히 Apple맛에 푹 빠져 있었다. 2+1 할인으로 3개 사서 여행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권하기.. 멕시코에서 남미 사람들에게 캔 위스키를 전파하는 특이한 한국 여자였다(..) 여행자들 중에서도 이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덕분에 여행자들과 친해지기도 했다. ㅎㅎ


Apple맛 외에 Cola, Lemonade, Dry, Agua, Ginger 맛 등등 있다. 우리나라 편의점에도 들어왔으면!



La última noche


풍경 속에 머무르고 싶은 밤. Taxco에서의 마지막 밤. Taxco에서 충분히 여유를 즐겼지만, 막상 마지막 밤이 되니 모든 것이 아쉽다.


호스텔이 위치한 골목길
매일 밤 축제가 펼쳐지던 광장


Taxco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도시다. Taxco만의 하얀 집과 울퉁불퉁한 골목길이 자아내는 풍경은 낮에는 동심, 밤에는 몽환의 세계로 이끈다. 뿐만 아니라 밤의 광장과 축제는 이 도시만의 은은한 매력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작가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새로운 단어를 발굴하듯, Taxco는 포토그래퍼의 사전에 새로 추가된 예쁜 단어 같은 도시였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경험한 적 없는, 또한 멕시코의 다른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의 도시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떠나기 싫었던 Taxco의 마지막 밤에 작별을 고하며ㅡ 내 포토 사전에 낯설고 신비롭고 이상한 나라로 저장다. 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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