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ón#1 레온에서 만난 완벽한 순간
언젠가 한 멕시코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가 레온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레온이 어땠냐고 물어봐서 그냥 나쁘지 않았다고 대답했더니 그 사람이 손을 내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사실 레온,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
사실 그 말이 이해되었다. 나는 레온을 갈 생각은 없었는데 Taxco에서 다음 목적지인 Guanajuato로 바로 갈 수 있는 차편이 없어서 가까운 레온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버스가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레온에 하루 묵게 되었다.
레온은 가죽으로 유명한 도시다. 가죽 시장에 대해서 나중에 쓰겠지만, 어쨌든 다른 도시들에 비해 눈에 띄는 매력이 있는 도시는 아니었다. 시간이 많지 않다면 개인적으로 솔직히 그렇게 많이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레온이라는 도시에 대해 아주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사람 때문도 아니고, 가죽 때문도 아니다. 레온이 내게 특별히 보여줬다고 생각되는, 노을 때문이다.
이날 레온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거리를 걷고 있었다. 카메라만 있으면 혼자서 지구 반대편까지도 달려가는 나이기에, 이왕 레온에 온 김에 열심히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마법의 시작을 알리는 하늘
El cielo que avisa del inicio de algo mágico
걷다 보니 어느새 해가 떨어질 시간이 되었다. 파란 하늘이 서서히 감빛으로 물들려 하던 참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동시에 구름이 비를 뿌리려는 낌새를 보였다. 두 타이밍이 마치 개기일식처럼 정확히 겹쳤다. 하늘은 그 사이에서 주홍빛이 되어야 할지 보랏빛이 되어야 할지 고민하는 듯하더니, 마침내 각성하듯 붉으락푸르락 거리며 노랑, 주홍, 파랑, 보라, 자주, 먹색, 이 모든 색을 온몸으로 집어삼켰다. 그 순간 내가 레온에 있었던 것을 운명이라고 믿고 싶다. 그것이 만약 자연현상이 아니었다면, 분명 하나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노을 속을 정신없이 헤집고 다니다 들여다본 성당은 어찌나 환상적이던지. 성당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어찌나 신비롭던지. 사람들이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은 어찌나 아름답던지.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컬러들은, 어찌나 거짓말 같던지. 말보다 더 거짓말 같은 사진,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사진으로 이날의 황홀함을 대신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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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d dream in Mexico
해가 사라지자 세상의 끝에 다다른 듯 순식간에 어둠이 스며들고 비가 무섭게 쏟아졌다. 하나의 의식 같은 순간이었다. 내가 직접 보지 않았다면 존재할 거라곤 평생 생각지도 못했을, 멕시코 땅에서 만난 기묘한 색감의 노을.
컬러들의 생경한 조합은 언제 떠올려도 생생한 자각몽으로 남았다. 꿈을 자각한 채로 꿈을 꾼 것인지, 꿈같은 현실을 진짜로 자각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도, 떠올리기만 해도 내 앞에 보랏빛 은하수가 쏟아져내릴 듯 마음속에서 현실로, 혹은 꿈으로 깨어난다는 것이다.
<이날 써둔 메모>
오늘 멕시코의 레온에서 완벽한 순간을 만났다. 정처 없이 걷던 해질녘, 갑자기 비를 토해내기라도 하려는 듯 하늘이 울렁였다. 노을빛이 묘하게 어우러지며 붉은, 푸른, 보랏빛의 마법이 온 세상에 펼쳐지는데...
ㅡ우리 모두는 다 함께 어떤 우주를 경험한 걸까?
노을, 비, 카메라, 그리고 나. 개기일식보다 더 기적 같은 순간. 아름다운 순간이 짧은 것은 오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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