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500일

퉁치려고 쓴다

D-134

by 세라

술에 취하면 인생이 지도처럼 한 손에 잡힌다

글쎄, 일단 한 마흔 살까지는 살 수 있을 것 같고

(거의 임박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육십 살까지 살 수 있을까

거기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생각들 전부 다 젊은 날들이었다고

오오, 살기 싫었던 젊은 날들의 나여, 하고

언젠가 한 문장으로 퉁칠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꼭 퉁치고 말 것이다

오오, 젊은 날들의 나여…… 하고

낼름 한 줄 써버리고 말 테다

글쓰기란 바로 이런 거라는 듯이

혼자 낄낄거리면서


죽으려다가 발견당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

주변 사람들이 돌봐주고 기다려줬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그래요, 당신들,

미안함 하나로 퉁치면서 버틸 수밖에 없었겠어요


미안하다는 한탕주의

발견당했다는 한탕주의

낼름 한 줄로 퉁칠 생각에 비하면

그깟 거 부끄럽지도 않다


한잔 더 해야겠다

오오, 뻔뻔하게

낄낄거리면서

그러면 미래가 훤해져서 당혹스럽고

나는 자꾸만 변명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변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은

시라는 걸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한 문장으로 퉁치는 시인들이

나는 너무 부럽다

그래서 시를 쓰고 싶다


죽고 싶음을 퉁치려고

살고 싶음을 퉁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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