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500일

우울한 성격은 없다

D-94

by 세라

내가 퇴사 날짜를 세며 일기를 쓰기 시작했던 건 다가올 간난에 맞서 전투력을 끌어올리고 생존을 도모하고자 함이었는데, 정작 날짜가 다가올수록 나는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고만 있었다. 퇴근 후면 세상으로부터 문을 닫고 알코올로 혈관을 채우며 그만하고 싶다, 그만하고 싶다, 혼자서 중얼거리다 보면 하나의 검은 점으로 서서히 끌어당겨졌다. 맹세컨대 그건 감정 조절 장치가 고장 난 알코올 중독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두 눈은 책으로 향하고 한 손에는 술잔을 든, 자신만의 고상한 취미 생활을 즐기는 이 시대 도시 여성의 모습이었다.


최근에 나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한 층 더 깊숙한 곳으로 끌어내려졌음을 알았다. 차라리 여행이라도 한 번 다녀오자던 마음은 어느샌가 파도에 휩쓸려 나갔고, 이력서라도 열심히 써보려 했지만 이 못돼 처먹은 업계에서는 더 이상 심폐소생술이 통하지 않을 거라는 불신이 태산같이 버티고 있었다. 청년창업지원사업에 도전해 보겠다고 드문드문 타올랐던 짧은 열정은 깜북 꺼져버렸고, 정신적 보루처럼 여겼던 글쓰기에 관해서는 아예 노트북 앞에 앉아지지가 않았다. 하다 못해 환기를 위해 몇 년 만에 영화를 예매했는데도 예매와 취소를 4번이나 반복하다가 포기했을 정도로 나는 심각하게 정체되어 있는 상태였다.


무엇보다 숲에 가지 못했다. 실업 후 1년이 넘도록 동네 도서관과 숲을 어슬렁대며 절망을 외치던 날들에도 맑은 공기로 내 정신을 세수시켜 주던 것은, 숲이었다. 헨리 소로도 '자연에 공감한다는 건 완벽히 건강하다는 증거다'라고 쓰지 않았던가. 인정한다, 숲에서의 내 우울에는 식물에 대한 사랑이 섞여 있었고, 숲에서의 내 절망에는 파란 하늘 한 자락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숲은커녕 대문밖으로 나가는 데도 엄청난 결심과 결단이 필요하다. 강제로 외출 일정을 잡아 보기도 했지만 막상 시간이 닥치면 취소할 수 있는 모든 걸 취소하고 가위에 눌린 듯 웅크리고만 있었다. 물론 회사에는 꼬박꼬박 출석하고 있었다. 이 두 버전의 전환에 대해서 나는 너무도 프로페셔널이었다.


그러니까 햇빛, 햇빛 주머니를 직접 꽂아 수혈을 받아야 할 정도로 나는 위중한 상태였다. 나는 내 영혼에 필요한 당분을 태양의 광자가 아닌 오직 알코올로만 충당하고 있었다. 숲 속을 걷고 나른해진 몸으로 향기롭게 만끽하는 과실주가 아니라, 나를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리는 검은 술. 알코올 중독자들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오직 한 방향, 아래쪽으로만 움직인다지. 나는 밤마다 우울한 기분에 침식당하고 있었다. 과연 이 엘리베이터는 나를 어디까지 끌고 내려갈 것인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생각난 두 시.




최근 기회가 생겨 심리 검사(MMPI)를 진행하고 상담을 받았다. 내가 염세주의적이면서도 완벽주의적인 골치 아픈 사람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결과지가 말하고 있는 것은 생각 이상이었다. 선생님은 이 정도면 일상생활이 매우 어려울 것이며, 약물 치료가 권장되는 수치라고 하셨다. 65점 이상이면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수치라고 하는데, 나는 80~90점 나온 항목들이 꽤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심한 것은 우울감과 사회적 내향성이었고, 그 외의 많은 항목들(강박, 불신, 중독, 부정성, 건강염려 등)도 70점을 웃돌았다.


우울감 안에서도 특히 높게 나온 '정신운동지체'는 우울증의 전형적인 특징이라 했다. 이 일 저 일 찔러보고 벌려봐야 뭐라도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지금 시작 자체가 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분노와 짜증, 우울과 절망에 휩쓸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없이 가라앉아 있는 상태였다. 오르막길도 내리막길도 아닌 드넓은 궁륭 평야. 벽도 내리받이도 없는 무미하고 평평한 날들. 밤이면 술에 취해 슬픔에 잠겼지만, 정작 그 슬픔은 내게 관심이 없었다. 꽉 찬 검은색이 아닌 텅 빈 검은색을, 나는 마시고 또 마셨다.


선생님은 이 세상에 '우울한 성격'은 없다고 하셨다. 내성적인 사람은 있어도 아무하고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것, 다시 말해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는 데 오래 걸릴 수는 있어도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때조차 마음이 불편한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라 했다. 아무리 내향적이어도 홀로 지구 반대편까지 여행을 다니며 친구를 만들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악기 연주하기를 사랑했던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내향성은 우울감의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향성은 우울감은 물론이며 고차원의 행복감과도 동일하게 연결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는 것에 거부감이 있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오후에 잠시 카페에 앉아 통창문을 바라보다가 나 진짜 우울증인가,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종종 상담 센터를 드나들면서도 이 모든 게 내가 의사와 환자 역할을 병행하는 무슨 병원놀이 같다고 생각했었다. 마치 저녁 메뉴 정하듯이, 우울하면 우울증. 불안하면 불안증. 내가 대답하고 내가 진단하기 놀이. 큭, 정말이지 지독하구나. 이런 나를 데리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수 있을까.




선생님은 내게 가장 시급한 것은 활력이라고 하셨다. 인간관계나 사회생활 문제 역시, '나'의 활력부터 우선적으로 끌어올린 다음에 생각해 보자고 하셨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되었다. 아파 보인다거나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일상적으로 들으며 살아왔는데, 이제 보니 우울증 같다고 생각한 사람도 많았을 것 같다. 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고작해야 그저 피곤해 보이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선생님은 운동하기(하다 못해 걷기라도 꼭)와 비타민D 챙겨 먹기를 권해주셨고, 생활도 함께 체크해 보기로 했다.




어쩌면 나의 가장 첫 번째 숙제는 이력서 쓰기도 아니고 친구 만나기도 아닌, 다시 숲으로 가기 아닐까. 그런데 이마저도 일요일에 잠시라도 나가볼까, 라고 생각해 보니 너무나 피곤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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