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8
상담 선생님은 무기력한 나를 데리고 과거로, 대과거로, 여행을 시켜주셨다. 회복 불능으로 보이는 세상 불신, 약물 치료를 권장할 정도의 우울감, 희망도 절망도 없는 방전, 피곤하고 또 피곤한 내가 첫 번째로 정박한 곳은…… 또 거기였다. 전세 사기.
3년 반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다. 긴 싸움 끝에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고, 손해 볼 뻔했던 돈도 거의 보전했으며, 사건에 대해서도 충분히 토로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다시 나오자 꺼져 있던 나의 정신에 즉각 열기가 올라왔다. 잘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 라는 미지근한 반응으로 일관하던 내가 처음으로 반응다운 반응을 보였다.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어때요?"
"……죽이고 싶었어요. 아니면 제가 죽어야 했어요."
'죽이고 싶음'과 '죽고 싶음'으로 일순간 나는 되살아났다. 그때의 나는 하루하루 미친 여자로 살았다. 아니, 미치지 못해서 환장한 여자로 살았다. 불 같이 싸우고, 개 같이 헤집고 다녔다. 서울에서 일산까지 몇 시간이고 걸으면서 울었고, 아무 공원 벤치에 앉아서 픽 웃다가, 머리를 쥐어뜯다가, 소리 없이 꺽꺽 울었다. 마치 등뼈로도 울 수 있다는 듯이. 그러면서도 곧 배신당할 회사에 꼬박꼬박 출근했고, 전화를 받으러 나가서 울고,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울었다. 그 뜨거운 나날들에 나의 뇌에는 절망의 액체가 용암처럼 녹아내리며 스키드 마크처럼 흡착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하여 지워지지 않을 슬픔의 회로가 새겨지고 있었다는 것을, 3년 반 뒤의 내가……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
"만약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
"……."
"저, 있다고요."
갑자기 온몸에 열이 났다.
……
나 아직 여기에 있어.
3년 반 뒤에, 너는 아직 살아 있어.
너의 미래가…… 여기에 있어.
살아 있음, 그 이상으로 무언가를 해내기 버거워하는 나, 그러나 나는 여전히 최우선적으로 '살아있음' 그 자체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죽이고 싶음과 죽고 싶음으로부터 매순간 나를 구해내면서. 최선을 다해서. 왼발 다음 오른발, 오른발 다음 왼발, 다음, 그다음을 살아내면서…….
"그래도 나는 주저앉지 않았군요?"
"그래도 나는 버텨냈군요?"
"그래도 나는 위기 상황에서 강해지는 사람이군요?"
나는 강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내가 버텨낸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나를 끌고 온 거라고 대답했다. 싸우는 것은 내가 죽도록 못하는 일이었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고.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고.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것이었다고. 선생님은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강한 거라고 했다. 그것 자체가 나를 지키는 마음이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목에서 열이 났다. 그래도 눈물을 참았다.
당시를 떠올렸을 때 죽이고 싶고 죽고 싶은 감정의 스위치가 즉시 켜진다는 것은, 내게 여전히 그 시간이 현재진행 중임을 뜻했다. 계속해서 현재였다. 선생님은 계속해서 나를 더 깊은 현재로 데리고 가셨다. 10대 시절. 나는 가로등 몇 개만 덜렁 켜진 어두운 아파트 뒷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 나는 왜 거기를 혼자 걷고 있었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이미지였다.
모든 걸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세사기 이전,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게 이미 새겨져 있었다. 어두운 길을 혼자 걷기. 터질 듯한 감정들을 말없이 감당하기. 왼발 다음 오른발, 오른발 다음 왼발을, 다음 그다음을 살아내기.
그때 나는 울고 있었던가? 그때부터 이미 등뼈로 울었던가?
기억나지 않아…….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그리 길지 않은 길 같았다.
전세 사기까지, 알코올 중독까지, 우울증까지, 그리고 살아있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