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라, 아무도 당신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멕시코 친구들은 춤추는 문화에 굉장히 익숙했다. 클럽에 가서 춤과 음악을 즐기는 것도 좋아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혼자' 클럽에 가는 그들의 일상은 내게 좀 낯설었다.
혼자 춤을 추러 간다고?
그들은 친구들과 함께 왁자지껄 떠들며 노는 것도 좋아하지만, 한편 혼자 가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혼자 삼겹살을 구워 먹으러 가는 것만큼이나 고난도가 아닌가(..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루는 멕시코 친구와 그의 가족들과 함께 바에 갔다. 한창 맥주와 칵테일을 즐기고 있는데 직원이 와서 가라오케를 이용할 수 있다고 말하며 신청곡을 쓰는 종이를 줬다. 나도 그나마 알고 있는 La oreja de van gogh의 La playa를 신청했다.
멕시코에서는 대부분의 바에서 음악을 틀 때 가운데 모니터 하나를 두고, 거기에 노트북을 연결해서 유튜브로 틀어 줬다.
문제는 그러니까..
신청곡 순서가 되면, 공개적으로(!) 앉아있는 바로 그 자리에 마이크를 갖다 주는 것이었다. 마이크는 모든 좌석에 닿을 수 있도록 엄청나게 긴(?) 유선이었다.
"이.. 이게.. 가라오케였어?"
사실은 그냥 무대였다. 내가 생각했던 그 가라오케가 아니었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 마이크를 줬기 때문에 그 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노래는 유튜브에서 노래방 버전을 찾아서 틀어줬다.
더 재미있는 것은, 혼자 와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도 자기 차례가 되면 그 자리에 앉아 마구 마구 감정을 몰입해서 노래를 부르곤 하는 것이었다. 별로 반응이 없는데도.. 그들은 정말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즐겼고, 실제로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다(..)
내 차례가 다가왔고 나는 점점 더 두려워졌다. 결국 반주가 시작되었고.. 다행히 옆에 있던 친구의 지원으로 함께 마이크를 잡았다. 하지만 사실 나는 스페인어 원문 가사를 잘 몰랐고 한국어 가사처럼 즉석으로 따라 부르기엔 어려웠다.
를..를르를르..를ㄹㄹ..ㄹㄹ...(?)
가사 읽느랴, 리듬 맞추느랴, 박자를 맞추는 것이 불가능한 구간은 대-충 어물쩡 넘어갔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자꾸 내가 그럴 때마다 호응을 하는 것이었다.
난데없이 서투른 스페인어로 노래를 부르는 동양인의 등장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이곳은 번화가가 아니라 동네의 작은 바였다.) 아깐 아무도 보고 있지 않는 것 같더니, 이번엔 온 세상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아, 정말 부담스러웠다.
가사를 엉망으로 부를수록 호응은 더욱 커졌고.. 심지어 바 주인은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안 돼요!ㅠㅠ)
쇼맨십이 1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뭐가 재밌었는지, 한국어 노래를 불러줄 것을 열화와 같이(?) 요청했고, 결국 나중에는 등쌀에 못 이겨 좀 더 신나는 노래로 골라 한 곡 더 했다는.. (아하하)
포인트 하나. 혼자여도 괜찮아
혼자여도, 춤을 잘 추지 못해도,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 그들. 사실은 '혼자'라도 '괜찮다'는 인식조차 없어 보였다. 그들은 행복과 자유로움의 유전자를 타고난 것 같다. 멕시코에서는 길에서 배 나온 아저씨가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이 손뼉을 치고 앉아 있는 것을 보는 것도 흔한 일이다. 유쾌하고 귀엽다.
포인트 둘. 가족과 함께
우리가 바에 간다고 했을 때 친구의 가족이 먼저 다 같이 가자고 제안해서 함께 갔는데, 사실 이번 한 번만 그랬던 게 아니라서 이런 정서가 신기했다.
포인트 셋. 가라오케는 공개 무대에서
덕분에 사람들 앞에서 성황리(?)에 성공적인 첫 데뷔(?)를 마쳤다. 부끄러웠으나 이상하게 다시는 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왠지 다음에는 한 스텝 더 나아가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즐거운 느낌이다.
혼자가 되어 '자신 그 자체'로 살 줄 아는 그들의 삶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함께 어울리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혼자가 되는 것도, 처음 보는 이와 함께 하는 것도 스스럼없는 그들의 방식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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