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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임명의 정치

연방대법원과 미국 정치 (2편) #RIPRBG #연방대법원 #대통령 선거

by 발태모의 포랍도

얼마 전 긴스버그 대법관이 사망하면서, 미국 연방대법원에 공석이 생겼다. 대통령 선거가 한 달 반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맞이한 이와 같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정치판은 이미 크게 술렁이고 있다.


(사진 출처: New York Times)


공석이 된 연방대법관 자리에 왜 이렇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일까? 연방대법원이 미국 정치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무엇이며, 다른 기관들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이 글에서는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몇 가지 기본적인 사실들을 설명하고자 한다.


미국 연방 헌법 2장 2절이 지시하는 대로, 연방대법관 임명은 전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이다. 단, 대통령이 추천한 후보자는 상원의 승인을 받아야 최종 임명된다. 예를 들어, 긴스버그의 경우,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지명을 받고 상원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대법관으로 임명됐었다. 100명의 상원의원 중 찬성은 96표, 반대는 3표, 기권 1표였다. 지난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추천한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찬성 51표, 반대 49표로 임명이 확정된 사례였다.


미국 대통령 임기는 4년이고, 대통령은 1951년 통과된 수정헌법 22조에 따라서 단 한 번만 연임할 수 있으니, 대통령 한 사람의 임기는 최대 8년이다. 그에 비해 헌법에 명시된 연방대법관의 임기는 "잘 처신하는 한"("during good Behaviour"), 즉 종신직이다. 여태껏 대법관의 임기는 그들 스스로가(은퇴) 혹은 하늘이(사망) 정해 왔다. 물론 대법관이 물의를 일으킨다면 다른 연방 정부 고위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의회가 탄핵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불명예스럽게 임기를 마친 대법관은 전무하다. 미국 역사 상 탄핵 심판을 받은 연방대법관은 단 한 사람, 1796년부터 1811년까지 복무했던 새뮤얼 체이스였다. 1804년 하원에 의해 탄핵 소추된 체이스는 상원의 심판을 통해 혐의를 벗고, 이후 1811년 사망할 때까지 대법관 자리를 지켰다.


행정부 수장에게 후보자로 낙점되어 입법부의 일부인 상원의 투표를 통해 임명이 결정되는 자리인 만큼, 대법관의 자리는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게다가 한 번 임명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스스로 은퇴하거나 사망에 이를 때까지 자리를 지키게 되기 때문에,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신이 떠난 뒤에도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게 될 대법관들이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자 유산이다. 이러한 까닭에 한 대통령이 임기 중에 몇 명의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을 것인가는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다.


가장 많은 대법관을 임명한 대통령은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이다. 그러나 워싱턴 대통령이 총 11명의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었던 (아니 임명해야 했던) 까닭에는 지금과는 다른 사정이 있었다. 건국 초기에는 연방대법원의 위세가 지금과 같이 크지 않았다(연방대법원이 독자적인 건물을 갖게 된 것이 1935년이라는 사실, 따라서 무려 146년 동안 셋방살이를 했다는 사실은 이 기관의 사뭇 초라한 시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때문에 대법관들이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고 떠나는 일이 잦았는데, 한 예로 초대 대법원장 존 제이는 뉴욕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대법원장 자리를 사임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 행보다.


최근 약 40년 동안의 임명 사례를 살펴보면, 각 대통령은 임기 중에 2-4명의 대법관을 임명하는 특권을 누렸다. 아래의 표에서 나타나 있는 것처럼, 레이건 대통령은 4명의 대법관을, 나머지 대통령들은 각각 2명의 대법관을 임명했다.


(표: 저자 작성)


한 대법관이 은퇴하거나 사망하여 새로운 대법관을 임명할 때 만약 전임자를 임명한 대통령의 정당과 신임 대법관을 임명할 대통령의 정당이 서로 다르다면, 사람들은 극적인 변화를 기대한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치색과 정책 방향이 상이한 만큼, 그 정당 소속 정치인에게 임명되는 대법관들 역시 비슷한 성향을 보일 것이라는 가정에서 비롯되는 예측이다. 그러나 적어도 역사적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극적인 교체가 대단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위의 표에서, 전임자와 후임자가 서로 다른 정당에 속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경우는 모두 네 번이다(Kagan-Stevens, Sotomayor-Souter, Breyer-Blackmun, Thomas-Marshall). 이 중 극적인 효과를 가져온 경우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마샬 대법관의 은퇴로 생긴 자리에 토마스 대법관이 들어선 사례뿐이다.


한편, 전임자와 후임자가 모두 한 정당에 속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경우라 할지라도, 한 명의 새로운 대법관이 유입되는 것 자체가 대법원 전체 분위기 변화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긴스버그 대법관이 그런 역할을 했고, 그와 많은 부분 대립했던 스칼리아 대법관 역시 그러했다.


지난 40년 간의 대법관 임명 역사에서 또 어떤 사실에 주목해야 할까? 우선, 새로 임명된 대법관들은 자신의 전임자보다 대체로 보수적 성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강조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케이건 대법관은 스티븐스 대법관보다, 알리토 대법관은 오코너 대법관보다 대체로 더 보수적이다(임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고써치 대법관에 대한 평가는 잠시 유보한다). 정반대의 행보를 보인 유일한 예외가 긴스버그 대법관이다.


법원 바깥의 정치 지형도 역시 적지 않게 변했다. 한 가지 중요한 변화는 양당의 양극화와 중간 지대의 소멸이다. 예를 들어, 40년 전에는 가장 보수적인 민주당 의원들은 진보적 성향의 공화당 의원들보다 훨씬 보수적이었고, 가장 진보적인 공화당 의원들은 보수적 성향의 민주당 의원들보다 훨씬 진보적이었다. 이제는 보수적 민주당 의원, 진보적 공화당 의원들이 있을 수 있는 중간 지대가 거의 사라졌다. 정치권의 이와 같은 변화는 전체 사회의 이념적 양극화를 추동하고 또 그것을 반영한다. 중간 지대가 사라지면서 작금의 당파성 정치는 보다 노골적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지난 3년 8개월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가속시켰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민주당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긴스버그 대법관이 사망하면서, 이미 첫 임기 중에 2명의 대법관을 임명하는 행운을 누렸던 공화당 트럼프 대통령이 또 한 명의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지금은 앞서 말한 흔치 않은 극적인 교체가 일어날 수 있는 그러한 상황이다. 긴스버그의 부고가 민주당 지지자들을 절망에 빠뜨린 것 이유가 바로 이 것이다. 개중에는 오바마 재임 시에 은퇴하지 않은 긴스버그를 나무라는 목소리도 거세다.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은 트럼프와 공화당에게 무조건적인 호재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왜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상술하고자 한다.



<연방대법원과 미국 정치 시리즈>

1편: 긴스버그 대법관을 추모하며

2편: 대법관 임명의 정치

3편: 술책과 계략? 혹은 진짜 정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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