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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준원 Jun 12. 2016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움을 덮고 불안함 가득한 진동이 울렸다

"우우우우웅... 우우우우웅"

점심시간, 오전의 허기짐을 채우던 중 식탁 위 엎어놓은 아이폰이 빨리 받으라며 부들부들 부르르 성화를 냈다. 할머니다. 발신처를 확인한 순간 나는 이유모를 걱정과 불안에 휩싸였다. 평범한 점심시간을 비집고 들어온 불안. 설상가상으로 전화를 서둘러 받았는데, 아차... 할머니가 이미 끊으셨다. 다시 전화를 했다. 이윽고 들리는 소리 '고객님이 통화 중이셔서 소리샘으로...' 통화가 겹쳤다. 무슨 일이지. 할머니는 원래 전화를 거는 분이 아니셨다. 




우리 집은 사람들이 말하는 '(자) 손이 귀한 집'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슬하에 2남 1녀의 자식을 두셨는데 안타깝게도 우리 집에는 자손복이 많지 않았다. 아이들은 사촌동생과 나 정도. 덕분에 나는 많은 사랑을 '독점'하며 자랐지만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집안에는 아이들보다 어르신들이 더 많다. 그 어르신들께서 우스갯소리로 하시는 말씀. 


"우리 집엔 갈 사람이 참 많다"


올해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산지 17년이 됐다. 나는 항상 잘하고 효도하는 손자를 꿈꿨으나, 아무리 스물 하고도 여덟 해를 살았어도, 조부모님에게 나는 항상 물가에 내놓은 아이다. 그래서 아직도 드리는 것보다 칭찬과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하다. 그런 내게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 어른들의 시간이 가는 것은 야속하리만치 빠르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얼마 전 뒤숭숭한 꿈을 탓하며, 나는 혹여나 요즘 들어 부쩍 건강이 안 좋아지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아닌지... 혹은 할머니가 다치셔서 급히 연락한 것은 아니신지(할머니의 단축번호 1번은 내 번호로 연결되어 있다)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오늘 아침에 급히 출근하느라 다녀오겠습니다란 말만 남기고 얼굴 한 번을 안 비춘 내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내가 그렇게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짧은 순간 많은 상상을 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어렵게 연결된 전화, 나는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마음이 떨렸다.




전화를 받으신 할머니는 낮잠을 주무셨는지, 약간 잠기신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다. '오는 길에 수박을 사다 놓았다고, 네가 좋아할 거 같아서. 전화를 하셨다고. 오늘은 언제 들어오느냐' 하셨다. 다행이었다. 내가 맞지 않아서, 이렇게 다행일 줄이야. 눈물이 핑 돌았지만 울진 않았다. 감수성이 풍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안도의 한숨이 '다행히' 먼저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일찍 들어가겠다는 말과 진지 잘 잡수시고 계시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오늘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짧은 불안과 찰나의 반성 덕분이었는지 오늘따라 집에 가는 길에 발걸음이 달다. 기분 좋게 누른 초인종 뒤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 왔다고. 

오늘은 손자가 일찍 왔다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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