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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준원 Jun 19. 2022

물에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인 것들 투성이다

몸이 따듯한 바닷물에 폭- 잠겨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몸에 힘이 원래 들어간 적 없던 것 마냥, 축 늘어져있다. 귀에선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내 삐- 이명으로 바뀌고 흥얼거리던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지지직) 트랜지션. 전환된 후 화면 속엔 내가 없다. 가라앉은 듯하다. 잠수가 하고 싶었을까, 바다가 끌어당긴 걸까. 방은 온통 물바다가 되어있다. 물이 분명 넘쳐흘렀을 것이다. 놀랐다면 발버둥을 쳤을테니. 아, 다행히 물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간 걸까. 나는. 사라지고. (지지직) 트랜지션. 화면 속에 내가 있다. 앉아있다가 갑자기 일어난다. 맞다, 난 기립성 저혈압이 있다. 어지럽지 않지만, 가슴에 손을 대 심장의 고동소리를 듣는다. 그김에 내가 살아있구나 그 증거가 되는 소리를 실감한다. 생의 기쁨이 느껴지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물을 열고 밖을 본다. 한 발을 내딛으면 바다에 푹 빠질 것만 같다. 귀에선 파도가 서로 부딫혀 으스러진 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다. 발을 뗀다. 바다에 떨어진다. 눈을 뜬다. 천장이 보이고 윗몸을 일으킨다. 나는 바다에 빠졌을텐데 빠지지 않았다.


그저,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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