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방송작가의 고백

오만과 편견

by 김주미
몇 해 전까지 나는 방송작가로 일했다.

그런 내게 부끄러운 경험이 몇 차례 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부산에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한 대안학교가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제작팀은 이 학교에 자녀를 보낼 다문화가정들을 취재하기로 했다. 그렇게 학교 측에서 추천해준 가정들 중에 두루가씨 가족이 있었다.


처음 두루가씨의 집을 방문했을 때, 집에는 두루가씨와 아이들만 있었다. 방 안에 걸어둔 가족사진을 보니, 두루가씨와 남편은 한 눈에 봐도 10살 이상 차이가 나 보였다. 사진을 보며 ‘이 부부도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결혼을 했구나.’하고 지레짐작을 했다. 다문화가정을 취재할 때, 어떻게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됐냐는 질문이 오히려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 같아, 나는 다문화가정 부부들에게 만남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다문화가정은 경제적, 문화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거운 질문들만을 늘어놨다.


그 때였다. 내 질문에 묵묵히 답을 하던 두루가씨가 갑자기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물어왔다.

“근데, 몇 살이세요?”

“저요? 서른 살요.”

“어머, 그럼 나보다 언니네!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근데 방송 만들려면 원래 이런 질문만 해야 돼요?”

“네? 왜요? 받고 싶은 질문이라도 있어요?”

“아니, 우리 가족을 촬영하려면요, 가족 소개도 하고, 우리 부부가 어떻게 만났는지 연애 시절 이야기도 하고, 시어머니랑 나랑 친해진 과정도 얘기하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 에요?


순간, 번쩍했다.

나는 앞에 앉은 두루가씨에게 질문을 한 것이 아니라 내 상상 속에 있는, 힘겨워하는 결혼이민여성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시간여동안 그녀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고 있었다. 두루가씨의 날카로운 지적을 받은 후, 나는 취재수첩을 덮어두고 마주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환한 미소와 경쾌한 목소리로 쉴 새 없이 얘기하는 두루가씨는 마치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씩씩한 동네 여동생 같았다.


스물아홉 살의 그녀는 네팔에서 왔다. 한국에 있는 남편과 사진을 주고받으며 정을 쌓았다는 두루가씨. 이후 남편을 사랑하게 됐고 결혼을 결심했지만 당시, 마을 대표로 무척 엄했던 친정 아버지는 귀한 딸의 한국행을 허락할 리 없었다. 결국, 두루가씨는 가족들 몰래 사랑을 찾아 한국행을 결심했고, 세월은 어느덧 10년이 흘러 지금은 아홉 살이 된 아들과 여덟 살의 딸을 둔 한국 아줌마가 됐다. 누구보다 유쾌한 성격 때문에, 한국말과 문화에 빨리 적응했고 이제 동네에서는 명물로 통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감초 같은 존재가 됐다.


그날 이후 두루가씨와의 인연은 계속됐다. 그녀는 대안학교 학부모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다른 엄마들까지 모아서 한국어 배우기를 주도했다. 웃음과 애교가 넘치는 두루가씨는, 어디서든 밝은 기운을 만드는 미소천사였다.


그런 그녀가 카메라를 향해 단 한번, 눈물을 보인 적이 있었다. 아들 진호가 어느 날, 친구들과 놀다가 와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고 했다. 아들을 달래 이유를 들은 후, 두루가씨는 자신 역시 눈시울을 붉혔다고 했다.

“아이들끼리 말과 당나귀, 노새가 뭐가 다른지 얘기하고 있었데요. 근데 갑자기 한 친구 가 우리 진호보고 ‘말하고 당나귀하고 섞여서 노새가 태어나니까, 너도 노새네.’ 하며 놀렸 다는 거예요. 한 친구가 그러니까, 다른 친구들도 ‘니네 엄마는 맨발로 다니는 후진 국에서 왔다며?‘하고 계속 놀리더래요. 저 때문에 아이가 상처받는 것 같아서 너무 속상 해요.“


하지만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우울해하고 있을 두루가씨가 아니었다. 그녀는 아들과 딸을 앉혀놓고 엄마가 한국인이 아니라고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아직 친구들이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니 다음엔 너희들이 알려주면 된다고 또박또박 설명했다. 역시, 씩씩한 두루가씨였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아이들에게 엄마의 나라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부산의 한 단체에서 ‘아시아문화한마당’이라는 행사를 개최했는데, 이곳에 네팔을 소개하는 부스가 마련된 것이다. 두루가씨 가족은 이른 아침부터 행사장을 찾았다. 오랜만에 엄마와 나들이를 간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들떠 있었다. 두루가씨도 행사장에 들어서자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네팔의 전통음악이 연주되자, 그녀는 아이처럼 좋아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엄마의 행복한 얼굴을 보는 아이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묻어났다. 촬영팀이 주변 풍경을 찍고 다시 네팔 부스로 돌아오자,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두루가씨 가족이 행사장의 분위기를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전통 의상을 입고, 네팔 국기와 민속품들을 하나씩 들고서 노래와 춤을 이어갔다. 아이들은 네팔 노래를 따라 부를 수는 없었지만, 엄마의 나라 네팔의 문화를 흥겨워하며 그 속에서 하나로 어우러지고 있었다.


이제는 방송 일을 그만두었지만, 나는 가끔 그 날의 풍경을 떠올린다.

십년이 흘렀고, 미디어에서 다문화가정을 다루는 횟수는 훨씬 늘어났지만 정작, 그들의 문화에 대해 제대로 알고 존중해주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직도 결혼이민여성에게 ‘한국인’으로 탈바꿈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다문화가정이 ‘한국가정’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다문화가정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 속에서 뿜어 나오는 희망의 기운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2006년 그때 내가 행했던 부끄러운 '오만과 편견'을 현재의 방송 제작진들은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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