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프로그램 구성법

편리함, 소통, 그리고 이해의 전략

by 김주미


나는 패키지여행을 좋아한다.


여행 관련 앱이나 정보가 넘쳐나서 자유여행을 즐기는 데 어려움이 거의 없어진 지금도,

일 년에 한, 두 번씩은 패키지 여행상품에 나의 몸을 맡긴다.

이런 나를 보고 지인들은 왜 할머니처럼 여행을 하냐며 놀리기도 하고, 진짜 여행을 멀리한다며 채근하기도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래도 굳이 변명을 하자면, 패키지여행만이 주는 재미와 편리함이 있다. 가장 큰 장점은 그 지역의 명소를 정확한 루트로 틀림없이 데려다준다는 것이다. 그것도 전용버스라는 실용적인 교통수단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처럼 결정 장애가 있거나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겐 제격이다.


두 번째 장점은 숨어있는 소통의 신, 바로 여행가이드들을 만날 수 있것이다.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지만, 그들이 여행기간 동안 보여주는 커뮤니케이션 기술들은 교과서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는, 실전비법을 담은 생생한 교본 같다.


세 번째 장점은 패키지여행에서 한 팀으로 엮어진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있다. 짧게는 2박 3일, 길게는 2~3주 동안 낯선 사람들과 같은 장소를 다니며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공간에서 쉬는 체험은 흔치 않다. 실제 패키지여행을 가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직업과 나이대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여행이 시작될 때 내가 받은 첫인상과 여행이 끝나며 남겨지는 끝인상을 비교해 그들의 인생을 상상해보고 이해해보는 재미까지 얻을 수 있다.


언제든 훌쩍 떠나고 싶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요즘 방송에서는 여행 관련 프로그램이 눈에 띄게 늘었다. 나처럼 패키지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뭉쳐야다’에서부터 누가 더 알찬 여행을 다녀와 방청객의 마음을 훔쳤는지를 대결하는 ‘배틀 트립’, 가이드들도 참고한다는 여행프로그램의 정석 ‘걸어서 세계 속으로’도 있다.


나는 여행프로그램들이 이렇게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패키지여행의 장점과 닮아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해하지 마시길! 성공한 여행프로그램 제작진들은 천편일률적인 패키지여행을 지양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내가 말하는 이 둘의 공통점은 잠재적 여행객, 즉 시청자들에게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 준다는 측면에서 서술한 것이다.


그럼, 여행프로그램 스토리텔링에 필요한 요소들을 찾아보자.


첫째, 시청자들 안방에서도 세계 곳곳을 누빌 수 있도록 편리함을 주어야 한다. 낯선 곳을 여행한다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비용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 여행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이 이러한 제약조건을 잊고 잠시나마 두려움 없이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서 CG로 만든 지도나 이용방법, 주의할 점을 담은 자막 등 여타의 프로그램보다 더 상세하고 많은 양의 정보 제공이 있어야 한다.


둘째, 여행지와 시청자를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소통을 책임져 줄 출연자가 필요하다. 이들은 때론 여행지의 정보를 전하는 충실한 안내자가 되고, 때론 여행지가 주는 여러 감정들을 생생하게 체험하여 시청자들이 대리만족을 느끼도록 돕는 존재여야 한다. 그래서 여행프로그램들은 고정된 출연자를 두기보다는 매회 그 여행지와 가장 어울리는 새로운 출연자를 선택하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셋째, 여행지 소개뿐 아니라 여행지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고국의 사람들도 좋고, 현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보는 스토리텔링도 좋다. 어쨌든 프로그램이 끝날 때쯤은 시청자들이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관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려는 시각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나도 여행프로그램을 구성한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프로그램과 여행프로그램을 합친 포맷으로 국내 유명 영화감독과 함께 그 영화가 촬영된 촬영지를 기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영화 속 특정 장면이 어디서 촬영되었는지, 감독이 그 장소, 그 공간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정보를 전하고 영화와 더불어 촬영지의 숨은 가치를 찾게 해주자는 것이 기획의도였다.


자정이 넘어서야 방송을작해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진 못했지만 나름 마니아층을 형성한 방송이었다. 여행프로그램 스토리텔러로서 내가 느낀 보람은 그저 스쳐 지나갈 때는 무의미하장소와 공간이 누군가에겐 추억장소로, 누군가에겐 꼭 한 찾아가고 싶은 곳으로 다시 의미 지워진다는 것이다.


당장 떠나고 싶은가? 그러나 그럴 수 없다면, TV 속 여행프로그램을 즐겨보자.

패키지여행을 하다 보면 자유여행 또한 하고 싶은 욕심과 용기가 생기듯이, TV 속 여행프로그램을 즐기다 보면 나 스스로 가이드가 되어 전혀 색다른 여행을 기획하고 싶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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