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듯이 쓰고 노래하듯 읽어라!
5월은 반가운 소식으로 시작했다.
그 처음은 ‘브런치북 수상작’에 금상으로 선정되었다는 공지였다.
이 매거진은 방송작가 시절을 회상하고 그 시절 희노애락에 대한 넋두리를 남겨보자는 소박한 기대로 시작하였다. 그런데 매거진을 읽어주는 얼굴 모를 독자들이 하나, 둘 늘어났고 브런치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영광도 누리게 되었으니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어제는 이보다 몇 배 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지난해 인문학 강의에서 만났던 주부 수강생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글을 써 상을 받았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이 선생님 덕분이라며, 상과 함께 받은 문화상품권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첨부해 메일을 보내주었다.
이 상 덕분에 사춘기에 접어들어 엄마에게 냉담하던 딸이 “엄마 다시 봤어”라고 웃어주었다고 했다. ‘생애 첫 글쓰기상’이라는 가치가 부여된 그녀의 수상 소식에 코끝이 찡해졌다.
미디어 비평 수업에서 만난 그녀는 토론 시간이 되면 누구보다 야무지게 자신의 의견을 내놓던 일등 학생이었다. 그러나 짧게라도 글을 써보라는 미션을 주면, 불안한 시선으로 내 눈치를 보다가 끝내 강의실 뒷문으로 도망을 쳤다.
물고기 한 마리 그리는 것에도 망설이고 땀을 흘리던 내 경험이 떠올라 남일 같지 않았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의 행동 중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단숨에 선을 휙휙 긋는데 그 거침없는 손길에 그림이 완성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처럼 그림 그리기가 두려운 사람들은 내 그림이 놀림감이 되지 않을까 해서 선 하나를 긋는데도 몇 번을 망설이게 된다.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면 첫 문장을 쓰고 지우고 하느라 다음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누군가는 글쓰기가 치유를 주는 행위라지만, 글쓰기 자체가 두려운 이들에게 그 시간은 곤욕스럽고 두려운 시간일 수 있다.
강의가 조금 일찍 끝난 어느 날,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글쓰기가 참 어렵죠?”
마치 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는 수업에서 글쓰기 시간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학에서도 공학을 전공했다는 그녀는 평생 글을 쓸 기회도 없었고, 말하기는 자신 있지만 글쓰기는 정말 피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방송작가 후배들에게 입버릇처럼 들려주는 충고를 그대로 전했다.
‘말하듯이 쓰고, 노래하듯 읽어라!’
하나의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면 옆자리에 친한 누군가가 있다고 가정하고, 그 주제를 모르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설명하듯이 이야기를 꺼내보라고 했다. 이때 자신이 하는 말을 핸드폰에 녹음할 것도 권유했다.
예를 들어, 영화 감상문을 쓴다면 “너 그 영화 봤어?”라며 질문으로 시작할 수도 있고,
“난 그 영화 참 재밌더라”는 인상 비평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옆 사람에게 영화를 소개하듯이 자연스럽게 시작해서, 그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와 그럼에도 실망스러운 이유를 이야기한 후, 자신의 녹음된 목소리를 들으며 한줄한줄 글로 옮겨 써본다.
그렇게 하면 한 편의 그럴듯한 감상문이 완성된다.
실제 많은 전문가들도 자신이 강의에서 했던 말을 글로 옮겨 책으로 출간하곤 한다.
다음은 이렇게 말하듯이 쓴 글을 퇴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퇴고할 때는 소리를 내어 읽어보되, 한 걸음 더 나아가 노래를 하듯이 읽어본다.
노래를 하는 느낌으로 글을 읽다보면, 긴 문장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져 문장을 보다 간결하게 다듬고 싶어진다.
노래처럼 내 글을 남에게 들려준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보다 쉬운 단어로 나의 생각과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싶어진다.
이처럼 말하기와 노래와 글쓰기는 다르지 않다.
방송 글쓰기는 더욱 그렇다.
첫째, 방송 글쓰기는 ‘글’로 쓰지만 시청자들은 ‘말’로 들으므로 일상 대화에서 쓰는 말투를 사용해야 한다.
둘째, 방송 글쓰기는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이지만, 이 주제에 대해 모르는 바로 옆 사람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킨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써야 한다.
셋째, 방송 글쓰기는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면서 읽거나 들을 수 있는 글이 아니므로 쉽고, 짧고, 강렬한 노랫말처럼 써서 듣는 즉시 공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때 나의 조언이 평생 글쓰기를 멀리하던 40대 주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녀가 막연히 두려워하던 글쓰기의 시간을
그저 말하기나 그림 그리기처럼 자신을 표현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이라며, 가벼이 여기도록 도운 것 같긴하다.
생애 첫 수상의 기쁨을 누리며 나를 떠올려 준 고마운 그녀에게도,
방송 작가를 꿈꾸며 지금도 고단한 일상을 보낼 후배들에게도,
그리고 앞으로도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살아갈 나에게도 '말하듯이 쓰고 노래하듯 읽어라!'라는 다짐은 꽤 쓸모 있는 지침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