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힘을 주는 최고의 작가
몸살이 났다. 이번 가을은 무사히 넘어가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연이은 강연과 프로젝트 마무리, 가족여행까지 예상치 못한 스케줄을 무리해서 소화하고 나니 결국 탈이 났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서 하루 쉬기로 했다.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와서는 대낮이지만 침대에 누웠다. 어른들이 자주 하시던 ‘만사가 귀찮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나도 이제 늙나 보다며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약기운에 취해 설핏 잠이 들려는 순간, 날카로운 기계음이 울렸다.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는 알림 소리였다. 단잠을 깨운 존재가 누구냐며 짜증스럽게 손을 뻗어 메시지 창을 열었더니 엄마의 문자였다.
첫 줄을 읽는 순간, 코끝이 시큰했다. 메시지를 다 읽고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맞지 않고 문장 부호 하나 없는 그 문자 한 통에 끙끙 거리며 다 잡고 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엄마가 미안 하내 건강 하게 못낞으서 어릴 때 맏있는것을 못 먹어서 자주 아픈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미안 그려니 지금이라도 엄마 마음 않아프게 옆 사람 생각 조금만 하고 정서방과 너 생각만 하고 행복 하게 살았음 참 좋게다”
문자를 몇 번이나 읽으며 한참 동안 그렇게 있었다. 감기 때문에 콧물이 나는 건지, 눈물과 함께 콧물이 흐르는 건지 알지 못한 채 휴지가 한가득 쌓일 동안 코를 풀었다.
엄마한테 문자 메시지가 오기 시작한 건 올여름부터다. 그 전에는 폴더 폰을 쓰며 전화 통화밖에 할 줄 모르셨다. 처음에는 전화기를 바꿔드린다고 해도 비싼 스마트폰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치셨지만 폴더폰이 고장 나고 더 이상 같은 기종을 구입할 수도 없게 되자, 할 수 없이 스마트폰으로 바꾸셨다.
내가 나서서 진작 바꿔드릴 수 있었지만 솔직히 귀찮았다. 스마트폰의 새로운 기능을 일일이 알려 드리는 것도, 고장 날까 봐 혹은 데이터를 많이 쓸까 봐 불안해하며 전화기를 쓰는 엄마를 지켜보는 일도 나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엄마에게 스마트폰을 사드리자 편해진 쪽은 나였다. 엄마는 친구들에게 물어서, 혹은 하루 종일 혼자 핸드폰을 연구해서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사진을 찍었고 찍은 사진을 보내고 받아서 파일함에 저장할 수도 있게 되었다. 평소 혼자 계신 엄마의 건강이 걱정돼서 하루에 한 번씩은 꼭 통화를 했는데 이제는 문자 메시지로 간략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어느 날 엄마를 만났더니 다른 사람하고 문자를 하는 것보다 나와 문자를 주고받는 게 참 재미있다고 고백했다. 왜 그런가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문자를 보낼 때 엄마가 봐도 틀린 글자가 많고 띄어쓰기도 제대로 표시를 하지 않고 보내는데, 나는 그래도 작가라고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맞춰서 문자를 보내주니 한글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나의 문자 내용 중 어려운 단어나 문장이 있으면, 일부러 엄마도 다시 써서 내게 보낸단다. 그 표현을 되새기며 공부해서 진짜 엄마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엄마와 주고받은 메시지들을 살펴보니 정말 내가 쓴 문장을 돌림 노래처럼 반복해 쓰며 답장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 몸도 마음도 괜찮으신가요?라고 내가 물으면, “엄마는 집이다 몸도 마음도 괜찮다"라고 답을 보내셨다.
내가 무심코 보낸 문자 한 통이 엄마에게는 한글 공부를 돕는 작은 교재였던 셈이다.
나에게도 엄마의 문자는 귀하디 귀한 텍스트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세상이 내 편이 아닌 것 같다며 한숨짓는 절망의 순간에도 엄마가 보낸 문자들을 읽으면 용기가 난다. 엄마의 글이 유명 작가의 글보다 내게는 더 울림을 주고 읽고 또 읽어도 지겹지가 않다. 짧은 문자에 엄마의 솔직하고 깊은 마음이 담겨 있어서가 아닐까.
내가 엄마에게 문자 보내는 법이나 맞춤법을 가르쳐 드릴 순 있어도,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글을 쓰는 방법을 가르칠 순 없다. 왜냐하면 그 방면에선 엄마가 나보다 한 수 위이기 때문이다. 문자 메시지 한통으로 읽는 이의 눈물보를 터트리는 힘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엄마는 이제 이모티콘 보내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셨다. 그중 제일 먼저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은 하트 모양의 이모티콘을 찾아 전송하는 법이다. 엄마는 역시 타고난 작가이다. 하나의 기호 안에 전하고 싶은 모든 말을 다 담아내는 재능을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