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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인형이 되고 싶습니다

한 해를 보내며.

by 김주미

오랜만에 만난 조카가 낡은 인형을 들고 있어서 물었다.


“인형이 왜 이래? 머리도 다 엉키고 옷도 실밥이 떨어진 것 같은데? 고모가 새 인형 사줄까?”


그러자 아이는 인형을 품에 더 꼭 안으며 말했다.


“안돼요, 제가 자주 목욕시켜서 이렇게 됐어요. 머리는 잘 빗겨주면 괜찮아요. 얘는 제 걱정인형이에요.”


“걱정인형? 너 걱정인형이 뭔 줄 알아?”


“네! 자기 전에 걱정하는 거 얘한테 다 말하고 나면 꿀잠 잘 수 있어요.”


“그렇구나, 우리 수민이 걱정을 이 인형이 다 가져가는구나. 그럼, 정말 소중한 친구네. 고모가, 몰랐어, 미안해.”


매일 밤 저 인형을 꼭 껴안고 속삭이며 잠들었을 조카를 상상하니 허름하고 못생겨 보이던 인형에게 나도 모르게 정이 갔다. 어느새 마음속으로 인형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부디 오래오래 튼튼해서 우리 수민이의 걱정도 계속 들어주고, 잠들 때까지 따뜻한 위로도 전해주렴.”


매년 12월이 오면 나는 헌 달력과 수첩들을 정리하며 일 년의 시간들을 정리하는 기회를 가진다. 지나간 시간들에 나름의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간직하기 위해서다. 그럴싸한 성과는 없어도 나만 아는 작은 성취들이 있다면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다. 혹시 큰 실패가 있었다 해도 실패에서 건진 것들을 남기며 마음을 토닥이고 내가 나를 진심으로 위로할 겨를을 준다.


올 한 해는 손에 잡히는 성과나 남들로부터 큰 인정을 얻지는 못했다. 새로운 지역과 낯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부지런히 뛰어다닌 것 같은데, ‘그래서 올해 넌 뭘 했어?’라고 누가 묻는다면 딱히 내놓을 결과는 없다. 그래도 나는 나를 칭찬하려 한다.


일 년 동안 나는 주위 사람들의 ‘걱정인형’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가족과 지인들이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내가 나서서 해결해 줄 힘은 없었지만, 곁을 지키며 떨고 있는 손을 꼭 잡아주거나 울고 있는 어깨를 감싸주는 일만큼은 해내고 싶었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오래 버텼다는 이유로 과분하게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강의도 이어갔다. 글쓰기나 인문학 강의에서 만난 학인들에게 지식을 가르치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놓은 벽이나 두려움들을 깨뜨릴 수 있도록 질문을 건네고, 속마음을 들어주려 했다.


진심이 통한 것인지 가족과 학인들은 나에게 걱정거리를 털어놓고 나면 마음이 편하다며 온기가 스며든 문자를 보내주어 되레 나에게 힘을 주었다. 이러니 나의 지난날들에게 잘 가라고, 수고했다는 따뜻한 인사를 보내도 괜찮지 않을까.


조카의 낡은 인형처럼 나 역시 허술하기 짝이 없는 존재이다. 이런 나에게도 재주가 있다면 그것은 누군가를 세심하게 관찰하는 시선과 작은 목소리도 놓치지 않고 귀 기울여 듣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걱정인형으로서 꼭 필요한 능력치인 셈이다.


새해를 기다리며 내년의 목표나 꿈이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나는 더 튼튼한 걱정인형이 될래요!”


주위 사람들의 근심을 경청하고 잘 소화시키려면 내 마음의 바탕부터 단단하고 굳건해야 하니 내년에도 나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살 것이다. 그러니 나의 사람들이여! 앞으로도 슬픔과 분노는 나와 나눠 가지시고 자기 삶을 배려하는 기쁨을 널리 널리 퍼뜨려 꿀잠 자는 날들이 많아지도록 서로 도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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