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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Sep 04. 2019

나만의 소박한 무대를 마련해 봐요

취미는 어른에게 순수한 표정을 선물한다

지난 주말, 지인이 소박한 공연이 있다며 동행하자고 했다. 별다른 약속도 없던 터라 귀호강이라도 할 겸 따라나섰다. 한 대학 동문들 중 성악에 관심 있는 중년 남성들이 모여 동호회를 만들었고, 일 년 동안 연습한 노래들을 공연하는 자리라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공연 자체보다는 공연이 열리는 공간이 흥미로웠다. 취미로 성악을 하는 분들이라니 실력이 뛰어날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않았다. 다만 공연장으로 선택한 곳이 언젠가 한번 가봤으면 하고 벼르던 장소였다. 1, 2층은 북카페이고 지하에는 아트홀이 자리하고 있는 대학가 앞의 복합 문화공간이라고 했다. 소모임이나 글쓰기 강연을 하기에 적당한 공간일 듯하여 사전답사 겸 다녀오자 싶었다.      


별 기대 없이 시간에 맞추어 공연장에 도착하자, 턱시도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분들이 직접 자리를 안내하고 음료수를 주문해 주었다. 처음 해보는 공연이어서 준비가 덜 되었다며 10분 정도 늦게 공연장에 입장해 달라는 부탁도 함께 받았다. 마음속으로 '그렇죠. 이렇게 서투른 모습이 더 자연스러운 거죠.'라고 말하며 느긋한 마음으로 공연을 기다렸다.      


20분쯤 흘렀을까, 나는 공연장을 들어설 때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감정을 느끼며 열렬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머리가 희끗하고 빌려 입은 듯 어깨선도 맞지 않고 소매 길이도 긴 턱시도를 입은 중년 남성들에게서 나는 그만, 아우라를 보았다. 얼마나 박수를 쳤던지 공연이 끝나자 손바닥은 뜨거웠고, 공연 내내 무대 위에 오른 이들에게 눈을 떼지 못해 눈까지 퍽퍽했다.     


공연이 그토록 훌륭했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 첫 곡은 여섯 명 단원 모두가 무대에 올랐다.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시작했지만, 일부 단원들의 눈동자는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어째 불안하다 싶더니 노래 중간에 한 단원이 가사를 틀렸다. 맨 앞줄에 앉아 무대에 오른 이들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전달받아야 했던 나는 민망함에 오히려 고갯짓으로 박자를 맞추어주며 응원의 기운을 보냈다.      


두 번째 곡은 여섯 명이 함께 합창을 하다 돌아가며 독창을 하는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아슬아슬하게 독창을 이어가더니 어느 순간 피아노 반주만 계속되고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한 단원이 옆에 있던 단원에게 손으로 신호를 보냈고 그제야 자신의 독창 파트를 알아챈 단원은 노래를 이어받았다.      


한 시간 남짓 이어진 그들의 공연은 어린 조카의 발표회를 보듯 조마조마함의 향연이었다. 가사를 잊어버려 허밍으로 얼버무리기도 했고 고음에서 음이탈을 내기도 하면서 크고 작은 실수를 매 무대마다 이어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아슬아슬한 공연이 계속될수록 관객들의 환호는 더 커지고 있었다. 공연장에 모인 서른 여명의 관객들은 이미 한마음이지 않았을까.      


'이 노래를 무사히 끝내게 해 주소서!'     


60분의 짧은 시간이었고, 서툴기만 했던 공연이었지만 그 자리에 함께 한 이들은 모두 알아차렸다. 무대에 올라 주목받는 상황이 어색하고 혹여 실수라도 할까 봐 얼굴에 경련이 날 정도로 떨고 있었지만 단원들은 노래를 부르는 순간,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섯 명의 중년 남성들은 노래를 부르며 긴장이 될수록 서로 눈을 마주치며 격려했고,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환호를 보냈으며 공연을 하는 내내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만큼이나 가슴 떨리던 공연이 끝나갈 무렵, 나는 깨달았다. 내게 오랜만에 '감동'이라는 감정이 찾아왔다. 그들의 공연이 빈틈없이 완벽하고 눈과 귀를 사로잡을 만큼 아름다운 선율만을 선보였다면 아마 "좋은 공연이었어요!"로 결론짓고 웃으며 미련 없이 돌아설 수 있었겠지.     


내가 그날 발견한 감정의 실체는, 마흔이 넘은 우리에게도 어른 시절의 순수한 표정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에서 오는 기쁨이었으리라.      


취미란 어쩌면 우리의 일상을 한 순간이라도 찬란하게 만들어주는 대단한 존재가 아닐까. 중년이 넘은 사람들의 일상은 밥벌이를 위해 쉼 없이 달려야 하고, 좋아하는 일보다는 잘하는 일을 선택해서 경력을 인정받는 데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어른의 무게를 짊어진 이들에게 취미 생활은 그저 나의 흥미가 이끄는 대로 움직여도 되고, 그 결과물이 반드시 완벽하거나 성공일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는 나의 순수한 열정을 담은 행위란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로봇을 만들고 손과 옷이 더러워져도 아랑곳없이 찰흙을 빚고 그림을 그리던 순간처럼, 취미는 나의 즐거움을 목표로 그저 과정에 몰입하면 되는 일이다.           


나의 취미는 무엇일까? 잘하고 못함에 상관없이 하고 있으면 일곱, 여덟 살 아이의 순수한 표정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그런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겠다. 그럼 나도 나만의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좋아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으니 어른의 삶도 꽤 괜찮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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