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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안다는 당신에게

가족도 나를 모른다

by 김주미


오랜만에 친정 가족들이 우리 집에 모였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서로 바빠 다 같이 모인 자리는 몇 개월 만이다. 서로 안부를 물으며 얼굴이 상했다고 걱정하다가, 엄마가 남동생에게 살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야야, 니 많이 피곤한 갑다. 눈 위에 뭐가 낫네.”


가족들이 동시에 남동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고개가 절로 엄마를 향해 돌아갔다. 황당해하는 다른 가족들을 대신해 내가 입을 열었다.


“엄마, 쟤 저거 점이잖아. 원래 있었는데 몰랐어?”


“어이? 점이라고? 난 처음 봤는데. 저런 게 언제 생겼노? 최근에 생겼나 보다.”


묵묵히 듣고 있던 동생이 눈을 아래로 깐 채 대답했다.


“엄마, 이 점 어릴 때부터 있었어요.”


엄마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어이? 진짜?”를 연발하시며 연신 동생의 얼굴을 훑었다.


옆에 있던 올케가 장난 삼아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다.


“어머니, 너무 하세요. 저 점 저랑 결혼하기 전부터 계속 있었는데, 아들한테 너무 관심이 없으세요.”

“모올라. 아들 만나도 둘이서 얼굴 마주 볼 시간이 없어서 그랬나?”


마흔이 다 되어가는 아들 얼굴을 요리조리 살피는 엄마가 귀엽기도 하고 멋쩍어하며 얼굴이 붉어지는 동생 모습도 재밌어서 가족들은 모처럼 큰 소리로 웃었다.


시댁 가족 모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종종 일어난다. 우리 부부는 생일에도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온 가족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은 적이 있다. 그때까지 아무도 몰랐단다. 남편이 미역국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심지어 어머니는 아들이 미역국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그래서 결혼 전 같이 살 때는 한 솥씩 끓여 놓고 매끼 미역국을 차렸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왜 어머니에게 미역국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남편은 무덤덤하게 답했다.


“그냥. 엄마가 미역국 끓이는 게 제일 편하신 것 같아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는 비슷한 말씀을 하시곤 한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도, 삼십 년 가까이 끼고 살았어도 자식은 잘 모르겠다고 말이다.


어디 자식뿐이랴. 뜨겁게 사랑하고 결혼해서 수년을 같이 산 부부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서로 모르는 것 투성인 것을. 그러니, 주위 사람들을 내가 다 안다고 단정 짓지 말자.


월요일 아침이면 나는 종종 불편한 인사를 받는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 중 자녀를 키우는 동료들이 주말에 아이와 놀아주다 보니 너무 피곤했다고, 차라리 일하는 게 쉽다고 푸념을 하면 누군가 꼭 한 명은 나를 지목해 이런 말을 한다.


“김 선생은 좋겠어. 돌볼 애도 없고, 둘이 사니까 집 안 일도 할 게 없을 테고, 주말이 얼마나 편하겠어.”


예전에 이런 말을 들으면 “저도 주말에 바빠요. 제가 얼마나 할 일이 많냐면요!”하고 일일이 설명하려 들기도 했다. 그들이 나의 일상에 대해 정말 관심이 있어 물어보는 말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그저 “네~ 네~”하고 무성의하게 응대할 뿐이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면 좋을 텐데, 꼭 한 마디씩 더해서 나의 화를 돋우는 사람들이 있다.


“진짜 김 선생은 돈 벌어 어디다 써? 맞벌이지만 애도 없고 부부가 둘 다 차도 없다고 하고, 돈 들어갈 때가 없잖아? 돈도 남을 텐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 커피도 쏘고, 밥도 좀 자주 사고해요.”


그럴 땐 난 표정으로 말한다. ‘아, 좀! 그만하시라고요!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세요.’라고. 물론 그들이 나의 표정과 진심을 읽을 리가 없다. 내 반응을 살피려 던진 말이 아니라, 아이 없는 삶은 이럴 것이라는 단정을 짓고 그저 허공에다 내뱉는 말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오늘도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책상 앞에 앉는다. 스트레스를 받아봐야 내 건강만 해친다며 스스로를 달랜다. 그래도 화가 가라앉지 않으면 자신의 업무를 나에게 미루거나 도와달라는 그의 요청을 못 들은 척, 바쁜 척하며 거절하고는 소심한 복수에 성공했다며 속풀이를 한다.


아이 없는 나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참견과 평가를 하는 당신에게!

당신의 엄마조차도 당신의 얼굴이나 식성, 속마음을 모를 수 있답니다. 그러니 하물며 나와의 그 사소했던 만남과 몇 번의 대화로 마치 내 삶에 대해 다 안다고 함부로 착각하지 말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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