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는 역할의 무게
내 동생은 올해 마흔이다. 서른 즈음에 결혼하여 딸아이를 낳았는데 어느새 초등학생이 되었다. 남동생과 올케가 조카를 잘 키워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다. 부모가 되어야 어른이라는 옛사람들 말씀대로라면, 동생은 나보다 마음의 키가 한 뼘은 더 큰 어른인 셈이다.
조카는 태어나서 백일이 되었을 때 큰 수술을 받았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아이가 크면서 부모도 함께 자란다는데, 동생 부부는 아이가 태어나고 몇 해 동안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정도의 무게를 너무 빨리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온 것이다.
지난 주말은 동생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학교에 들어간 후 부쩍 자라서 제법 대화가 되고, 오히려 고모에게 또래의 놀이를 가르쳐주는 조카를 보니 뿌듯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동생과 올케의 얼굴이 보였다. 삶의 희로애락을 남들보다 일찍 겪고 ‘사는 게 다 그런 거지’라는 초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이.
내 눈엔 처음 결혼하겠다고 두 손을 꼭 잡고 집을 들어서던 20대 후반의 남녀 모습이 눈에 선한데 그들도 이제 중년으로 접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동생 부부가 다투거나 가벼운 말싸움을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아이가 혹여 아플까 노심초사하며 지내다 보니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늘 배려하며 지냈기 때문이리라.
부모라는 역할이 처음이었던 그들은 늘 새로운 문제를 맞닥뜨려야 했고, 그 순간마다 불안하고 두렵고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씩씩하게 모든 시간을 견뎠다.
내가 올케에게 “괜찮아?”하고 물으면 늘 돌아오는 대답은 “전 괜찮아요”였다. 동생에게 “힘들지 않아?”라고 물으면 “와이프랑 아이가 더 힘들지”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정말 괜찮다고 믿었나 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부모니까 잘 이겨내겠지’라고 말이다.
문득 미안했다. 내가 부모로 살지 않아서, 그들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를 알아차리지 못했단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괜찮아요”라고 답할 때 나는 말해줬어야 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으니, 억지로 괜찮으려 애쓰지 말자고. 너희도 부모이기 전에 아직 서툰 청춘일 뿐이니 가끔은 힘들다고 투정 부려도 된다고.
훌쩍 커버린 조카 뒤에, 외모는 아직 삼십 대의 청춘이지만 마음속에선 참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부모로서의 동생과 올케가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의 시간을 거꾸로 돌려주고 싶었다.
그럴 수 없기에 지금이라도 동생 부부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이제는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꼭 가졌으면 좋겠다고. 아이를 위해서, 다른 가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도 에너지를 할애했으면 한다고. ‘부모’라는 이름표 뒤에 감춰두었던 ‘청춘’이란 이름표를 다시 꺼내 가슴 앞에 붙이길 바란다고 말이다.
누군가는 부모가 아니니 쉽게 던지는 조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부모라서 꼭 어른스러워야 하고 인내해야 한다는 것도 또 하나의 강박이 아닐는지.
사랑하는 가족이자 친구이기도 한 동생 부부가 마흔 이후의 삶에서는 좀 더 이기적이었으면 좋겠다. 아이 없는 삶을 살아서 세상 물정 모르고 철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 우리 부부처럼, 때론 그들도 스스로에게 흐트러질 자유를 허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