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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보단 어른이 되고 싶어요

어른 역할에 관한 단상

by 김주미


최근에서야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정주행 했다. 보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냉혹한 현실을 오롯이 혼자 버티며 살다 보니 온 몸이 상처투성이고, 마음에 품은 건 날카로운 칼날밖에 없었던 20대 지안이. 이런 지안이가 자신에게 처음으로 "착하다", "용감하다" 칭찬하는 아저씨, 박동훈을 만났다. 그 아저씨가 골목길이 위험하다며 집까지 바래다주는 날, 동훈의 형제이자 친구들도 지안의 상처를 알아보고 말없이 그녀의 곁에서 함께 걸었다.


'어른'이라는 울타리를 처음 경험했을 지안이의 심정이 전해지는 듯해서 나도 모르게 드라마를 보는 내내 울었다. 그녀가 그동안 한 번도 내뱉지 못했던 "감사합니다"라는 대사를 듣자, 어쩌면 지안이는 그 말을 할 순간을 누구보다 기다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사람들의 삶을 자신의 잣대로 마음대로 평가하고 조언이나 충고란 말로 상처를 주는 가짜 어른이 아닌,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한눈에 알아보고 말하지 않아도 조용히 가서 감싸주며, 그저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진짜 어른이 건네는 위로 말이다.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좋은 어른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러다 사랑하는 조카들이 떠올랐고 나는 과연 조카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일까 하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부모는 아니지만 고모이자 숙모로서 ‘내가 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어른으로 남는다면 인생이 참 보람 있을 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흔히 결혼을 해야, 아이를 낳아야 진짜 어른이 된다고 말한다. 결혼을 하거나 출산을 하면 가장으로서, 혹은 부모로서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세상의 다양한 문제들이 나의 문제로 다가온다는 뜻에서 이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실제 사회 문제나 환경 문제에 별 관심이 없던 나의 친구는 아이를 낳고 나서 나를 만날 때마다 기후 문제나 환경호르몬의 심각성을 이야기한다. 그 친구를 보면 결혼이나 출산이 한 사람을 보다 성숙하게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그럼 바꿔서,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으면 어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며칠 전 식당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어린이용 놀이방이 마련된 식당이라 평소에도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은 곳이었다. 놀이방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은 흥을 주체 못 하여 식당 곳곳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서로 다른 집의 두 아이가 충돌했다. 두 아이 모두 넘어져 울기 시작했고, 이내 엄마들이 달려와 아이들 상태를 살폈다. 그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상대 아이를 향해 매섭게 쏘아보며 "식당에서 뛰어다니면 안 되는데", "애를 좀 조심시켜야지"라고 말하고 각자의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이 황당했다. 어른이라면, 내 아이의 안전을 먼저 확인한 후에라도 상대 아이는 다치지 않았는지 살피고 식당에서 조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아이들에게 당부의 말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내 아이만 중요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소리치듯, 자녀를 감싸 안고 돌아서는 부모들의 모습에 씁쓸함을 느꼈다.


일부겠지만 아이를 낳은 후 자기 아이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부모가 되거나, 스스로의 삶뿐만 아니라 아이의 인생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부모들도 있다. 반대로 비혼이거나 무자녀 부부이지만 형편이 어렵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한 어린이들을 후원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사람들을 나는 많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이 없이 산다고 말하면 철이 없다거나 이해심, 이타심이 부족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무심결에 "아이가 없어서 그래", “자녀가 있으면 그런 말 못 하지” 같은 표현들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은 아이를 좋아하지 않거나, 어린이와 청소년 관련 문제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재빨리 판단해 버리기도 한다. 미안하지만, 선거철마다 후보자들의 공약집에서 내가 가장 먼저 확인하는 분야는 교육이다. 후보자가 어떤 교육 정책을 구상하고 있는지를 보고 나의 표가 다음 세대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고민한다.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안전한 울타리가 되고 싶다는 고민과 행동은 부모인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에서 ‘어른’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는가에 따른 차이,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관에 따라 나뉘는 게 아닐까.

곧 5월, ‘어린이 날’이 다가온다. 내 자녀, 내 조카들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드라마에서 어둠 속에 떨고 있던 어린 시절 지안이처럼, 주변에 어른들의 따뜻한 시선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이 없는지 살펴봐야겠다. 나는 부모가 되고 싶진 않지만 좋은 어른은 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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