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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Jul 31. 2019

처음 어른이 됐다고 생각한 날

머리 모양을 마음대로 바꿀 자유

내가 처음 어른이 됐다고 생각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열아홉 살 겨울, 대학 수학능력 시험을 끝내고 원하는 대학 몇 곳에 지원서를 낸 후 집에서 빈둥거릴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집에서 그동안 눈치 보며 봐야 했던 텔레비전을 내키는 대로 보고, 독서실에서 엄마 몰래 숨겨서 봤던 만화책도 내 방안에 쌓아놓고 읽었다.      


수험생 때는 주말에 짬을 내야 들릴 수 있었던 동네 서점을 이틀에 한 번꼴로 들러 신간들을 구경했고 단편들은 책장에 기대어 한, 두 시간 동안 그 자리에서 완독 할 여유가 생겼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아, 드디어 달콤한 어른의 삶이 시작되는구나' 싶었다.      


그날도 주인아저씨의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서점 안을 방랑하던 나는 그동안은 좀처럼 머물지 않았던 코너 앞에 서고 말았다. 바로, 패션잡지 코너. 한 잡지에서 '새내기 패션 정복' 쯤으로 기억되는 기획 기사에 시선이 꽂혀버렸다.      


나를 받아줄 대학이 어디인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한, 두 달 후면 나는 대학생이 될 터였고 여중, 여고를 다니며 벗어나지 못했던 똑 단발과 교복의 허물을 하루빨리 벗어던지고 싶었다.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럽고 생기 있는 얼굴을 만들어준다는 화장법, 자기 얼굴형에 어울리는 헤어스타일 추천, 실용성에 유행 감각까지 갖추어 줄 캠퍼스룩까지 나의 외모를 '어른'으로 만들어 줄 마법의 레시피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자석에 끌리듯 애당초 사려고 했던 책들을 지나쳐 잡지로 손이 갔다. 잡지를 사면 최신 유행 색들을 모아놓은 아이섀도 세트도 선물로 준다니 당장 사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잡지를 가질 기회를 뺏길 것만 같았다. 난생처음 내 돈으로 패션잡지를 샀고 집에 와서는 한 장 한 장 펼쳐 정독하기 시작했다. 잡지 옆에 메모지까지 두고 내가 '어른'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무기들이 무엇인지 써 내려갔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잡지에서 제안하는 이른바 '어른용 비품'들을 다 정리한 후 뿌듯한 마음으로 메모지를 훑었다. 이제 여기에 쓰인 대로만 하면 나는 촌스럽지 않은, 아니 멋을 아는 어른이 될 참이었다.      


며칠 뒤, 잡지 내용을 요약했던 메모지를 내 손으로 꼬깃꼬깃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잡지의 조언을 따라 한 나의 외관은 여러분이 상상한 대로, 그야말로 촌스러움의 극치였기 때문이다. 그중 백미는 헤어스타일이었다. 당시 탤런트 김희선이 드라마에 하고 나와 유행이 된 파마는 잡지에서 분명 나 같은 달걀형 얼굴에 어울린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파마를 한 내 모습을 처음 마주한 엄마는 차마 이쁘다는 말은 못 하고 표정이 일그러지며 "괜찮네, 괜찮아"라고만 되풀이했다. 무뚝뚝한 남동생은 "누나 머리 빗자루 같아"라는 말을 던지고 외면하듯 자리를 피했다. 친구들도 충격이었는지 나에게 핀과 고무줄을 잇따라 선물하며 풍성하다 못해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어떻게 수습할지 아이디어를 내어주었다.       


열아홉에서 스무 살로 넘어가던 그 시절, 나에게 '어른'의 정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선생님들이 정해 준 머리 길이를 따르지 않아도 되고, 기분에 따라 화장을 해도 되며, 내 눈에 이쁘게 보이는 옷을 마음대로 입을 수 있는 자유가 어른의 특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는 몰랐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먼저 채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을 따르는 것이나 세상의 기준에 따라 나를 꾸미는 것이나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에겐 나를 찬찬히 관찰하고 이해할 시간이 먼저 필요했는지 모른다. 내가 진짜 되고 싶은 어른은 어떤 향과 색을 가진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봤다면 어땠을까.       


며칠 전, 우연히 처음 방송작가를 시작했을 때 같이 일했던 분을 만났다.      


"김 작가, 20년이 흘러도 하나도 안 변했네. 헤어 스타일도 그대로인데?"     


그러고 보니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년 전에도, 마흔이 넘은 지금도 나는 여전히 단발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그것도 귀밑 3센티미터 길이로!     


열아홉 살에는 그렇게 밉고 답답해 보여 벗어나고 싶던 머리 모양이 요즘은 꽤 마음에 든다.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고, 제일 손질하기 편한 스타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전문가들이 본다면 더 나은 모양새가 있겠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최선의 선택이라 믿고 있다.      


어른이 되는 순간은 어쩌면, ‘자유'라는 빛나는 외침 뒤에 선택에 대한 책임과 두려움이라는 그림자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때가 아닐까.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막상 그것이 손에 잡히려 하면  멈칫거리고 뒷걸음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만사 제쳐두고 미용실을 가야 한다. 긴 휴가를 다녀오느라 정리하지 못한 나의 머리카락이 글 쓰는 이 시간의 몰입을 흐트러뜨리고 있다. 늘 그렇듯 “그냥 짧은 단발로 잘라주세요!"를 외치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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