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제일 아낀다
누군가에게 들은 얘기다.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들이 모인 회식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란다.
한 남성이 식당에서 나온 된장찌개를 먹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거 맛있네. 집밥 같다. 난 애들 중학교 간 뒤로는 평일 저녁엔 집에서 거의 밥을 안 먹어. 애들이 학원 가고 집에서 저녁 먹을 시간이 없으니까 나 혼자 먹기도 그렇고, 차려달라고 하기엔 더 눈치 보이고. 그래서 요즘은 회사 식당에서 세끼 다 해결하는 날이 많아.”
그러자 옆에 있던 남성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아우는 그래도 나보다 낫네. 애들 고등학교 가면 과외비도 같이 올라. 대학 등록금도 준비해야 하고. 회사 식당에 내는 몇 천원도 아까워서 집에서 도시락을 싸와. 그래도 내가 나은 건가? 다행히 도시락은 마누라가 싸주거든. 뭐, 냉장고에 있는 똑같은 반찬을 그냥 담아주는 거지만.”
이를 지켜보던 30대 남성이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울상을 지었다.
“형님들 보니 갑갑하네요. 실은 저도 아기 태어나고 나서는 와이프한테 운동하러 가고 싶다는 말을 차마 못 해서 야근한다고 거짓말하고 가요. 운동하고 나서 땀 흘린 옷들도 집에 못 가져가서 회사 세탁실에서 몰래 빨래를 한다니까요. 애 좀 크면 나아지려나 했는데, 형님들 얘기 들으니 앞날이 더 걱정입니다.”
회식 자리는 ‘누가 누가 더 불행한가’를 겨루며 우울한 분위기에서 끝이 났다고 한다.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 남성들도 금요일이 되면 즐거워하기보다는 오히려 한숨을 쉰다. 아내와 맞벌이이든, 그렇지 않든 육아는 힘든 일임을 잘 알기에 주말에라도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외출을 하는데, 그게 직장에 나와 일을 하는 것보다 더 고된 일이란다. 아이를 낳고는 “월화수목금, 금! 금!’으로 이어지는 일상을 살고 있다며 휴일을 갖는 것이 이루지 못할 꿈이 되었다고 말한다.
남편들의 고충이 이 정도인데 아내들의 고충은 말해 무엇할까. 주말에 아이들을 보는 시간이 직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몇 곱절 힘들다고 말하는 남편들 넋두리를 듣다 보면, 하루 온종일 혼자 아이를 돌봐야 하는 아내들의 몸과 마음의 고됨은 어느 정도 일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남편들도 아내들이 자신보다 더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에 의식주에서 얻어야 할 만족감을 포기하고 사는 것이 아닐까.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우리 부부로서는 이들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자의든 타의든 ‘부모’가 되기를 포기한 우리에게는 자신의 즐거움을 자녀와 가정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삶의 태도나 ‘슈퍼맨’, ‘슈퍼우먼’으로 불릴 만큼 많은 일들을 척척해내는 일상의 풍경들이 존경스럽다. 물론 아이들을 키우며 얻는 기쁨이나 행복, 보람과 같은 감정들은 이들의 노고와 비할바가 안 될 만큼 귀하고 큰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나는 그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 남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기적이란 욕을 먹어도 좋고, 철없는 부부라 손가락질을 당해도 할 수 없다. 누군가 나에게 왜 아이 없는 삶을 택했냐고 조금 더 노력할 생각을 하지 않았냐고 채근한다면 난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내 인생에서 우리 부부, 아니 나 자신이 제일 소중하니까요”
지금도 무리하게 걷거나 비 오는 날이면 고관절이 뻐근해지면서 익숙한 통증이 찾아온다. 세 번째 유산을 하고 나서 골반이 틀어진 탓이다. 그때는 몸도 몸이지만, 마음의 상처가 더 깊었다. 무기력이 일상을 지배하여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하루하루가 이어지던 그때, 나를 담당하던 산부인과 의사는 말했다.
“한 번 더 시도하시죠. 이번에도 만약 안 되면, 다음번에 한번 더 용기를 내시면 되고요.”
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출산’이란 관문을 통과하려면 결국 몸에서 느끼는 통증이나 마음에서 들려오는 절망의 소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용기 한 스푼’이 필요했다.
내가 출산이라는 과업을 이뤄내는 날까지 책임지겠노라며 자신을 믿으라던 의사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는 의사가 말한 용기 대신 다른 방향으로 용기를 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 때문에 아직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은 나의 인생을 저당 잡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일이 아닌 오늘 이 순간, 눈앞에 있는 이들을 충분히 사랑하며 살기로 했다.
이 모든 결정에 남편은 동의와 지지를 보냈다. 아이를 낳는 용기를 내지 않은 덕분에 우리는 다른 부부들에게 쉬이 허락되지 않을 일들을 누리며 살고 있다. 아마도 남편은 앞서 불행 게임을 하던 남성들의 사연 중 공감이 될 이야기가 거의 없을 테니까.
나 역시 그렇다. 아침 6시에 일어나 헬스장으로 가서 운동과 반신욕을 하고 출근한다. 업무를 마치면 한가롭게 카페에 들러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한숨 돌린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남편이 게임을 한다고 밤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으니, 밤에도 글을 쓰거나 공부를 하며 여유롭게 내가 채우고 싶은 감성과 지식들을 채울 수 있다.
아이 없는 삶을 자랑이나 하겠다고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저 저마다 행복의 기준과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흔히 sns나 대화 중에 나의 일과를 얘기하면 자녀를 둔 후배나 친구들은 “부럽다”는 말을 연신 내뱉는다. 물론 진심이 아니다. 그들이 얼마나 자녀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만큼 부모도 더 깊고 넓은 사람으로 성숙해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속으로는 ‘당신은 이런 기쁨과 충만함을 평생 느껴보지 못할 테지요’하며 나를 측은하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 있는 삶’을 살아내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더불어 나의 선택도 존중받길 원한다. 남편과 아내 모두 지치지 않고 육아를 할 수 있도록 사회가 나서서 지혜로운 방법들을 찾아내기를 희망한다. 아이가 있어 아이가 전부인 삶도 좋지만 자녀가 있는 부부든, 무자녀 부부든 오롯이 나의 감정과 나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이 잠깐이라도 꼭 필요하지 않을까. 인생이라는 마라톤은 길고 부부라는 매듭을 이미 묶어버려 이인삼각을 뛰어야 하는 우리는 오래도록 같이 달리기 위한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