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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드라마는 불편합니다만

부부의 행복은 출산으로 완성된다?

by 김주미

어릴 때 혼자서 동화 읽는 시간이 좋았다. 학교를 가지 않는 방학이면 하루에 몇 시간이고 방에 앉아 이미 읽었던 책들까지 다시 꺼내 읽곤 했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도 성향이 있었던지 호불호가 확실히 갈렸다. 대다수 동화들을 재밌어하며 읽었지만, 어쩐지 신데렐라나 백설 공주같이 왕자님을 만나 시련을 극복하고 결혼으로 결말을 짓는 이야기에는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그때의 난 “왕자님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에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나의 부모님은 20대 초반에 만났고, 아버지가 군 복무를 하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지극 정성으로 음식을 준비해 면회를 다니며 애틋한 연애를 이어갔다. 양가 어른들의 지원이 없어 결혼식도, 신혼살림도 넉넉하지 못하게 준비해야 했지만 두 분은 행복했다. 그러나 얄궂게도 어려운 시기를 잘 헤쳐나가고 형편이 나아질 즈음, 아버지는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어린 시절 나는 주위 친척이나 이웃들 중 이혼이나 부부싸움으로 서로를 할퀴거나 헤어지는 사람들을 많이 보며 자랐다. 그래서인지 결혼이 곧 행복이라는 동화 속 결말에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줄곧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콘텐츠 보기를 좋아했다. 특히 드라마는 석사와 박사 논문의 주제로 한국 드라마를 연구했고, 현재는 전 세계 드라마들을 분석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만큼 애정 한다. 드라마 역시, 방송되는 시간대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몰입해서 보는 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가족드라마나 주말드라마는 멀리하게 되었고, 보더라도 불편한 마음으로 시청을 하게 되었다. 왜일까.


어린 시절 행복한 결혼으로 끝맺음하는 동화에 공감할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은 가족드라마의 흔한 엔딩 장면에 수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대가 어울려 사는 가족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에서는 안하무인으로 자기밖에 모르던 철부지 손녀 며느리가 입덧을 하거나 아이를 안고 나오는 장면을 보여주며 진짜 이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고 말한다. 가난을 대물림할 수 없고, 자신의 삶을 희생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며 계약서까지 쓰고 결혼한 젊은 부부는, 드라마 결말에서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부모님에게 손주 소식을 전하며 효도를 한 것으로 묘사된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많은 동화들이 행복을 완성하는 덕목으로 결혼을 제시했다면, 가족과 부부의 삶을 다룬 많은 드라마들은 임신과 출산을 행복을 완결 짓는 요소로 나타낸다. 게다가 자기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여성 혹은 부부가 부모가 되고 난 후에야 가족의 의미, 사회를 더불어 사는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는 식의 논리는 미혼자나 무자녀 가족에겐 꽤나 폭력적이다.


많은 드라마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사람들을 정상인으로, 나아가 사회와 가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완수한 사람으로 그린다. 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강조할수록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비정상으로, 또는 사회에서 부여한 의무를 다하지 못했거나 삶에서 완전한 행복을 충족하지 못해 불행한 개인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다.


뉴스나 예능 프로그램과 같은 미디어들은 결혼이나 출산을 꺼리는 여성들은 자신의 몸매나 일상이 망가질까 봐, 혹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으로만 재현한다. 천편일률적인 방송을 보고 있으면, 제작진 주위에는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마저 든다.


실제 무자녀 부부들에게 물어보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가정마다, 더 세밀히 말해 부부라도 남편과 아내가 아이를 낳는 이유가 다를 수 있다. 무자녀 부부의 수만큼 아이가 없는 삶을 선택한 이유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말이다.


누군가 혼자 사는 삶을, 그리고 자녀 없는 삶을 선택하고 결정했다면 그들만의 이유가 있으므로 그들의 삶과 결정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이렇게 불평불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못 말리는 드라마 애청자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도 많지만 그만큼 심금을 울리고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명품 드라마들도 있다. 드라마는 내가 만날 수 없거나 내면까지 알 수 없었던 타인의 삶을 알아가고 이해하게 만들어 주는 소통의 창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신데렐라나 백설 공주, 미녀와 야수 같은 동화들이 어린이에게 성차별 의식과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해서, ‘결말 다시 쓰기’처럼 기존 이야기를 다채로운 시각으로 수정하는 시도들이 활발하다는 기사를 읽었다. 드라마에도 이런 의미 있고 용기 있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바라는 건 너무 허황된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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