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의 고충
#여자, 순옥 씨 이야기
올해 예순여섯인 순옥 씨는 스물셋의 나이에 결혼을 했다. 결혼하고 사업을 하는 남편을 따라 서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곧바로 세 살 터울의 남매를 나았다. 첫 딸을 낳고는 남편 사업도 자리를 잡고, 전업주부의 일상에 적응하여 편안한 삶을 살아갔다. 장손과 결혼한 며느리로서 시댁에 꼭 손자를 안겨드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둘째로 아들을 낳으면서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다.
크게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안락하던 순옥 씨의 삶이 흔들린 것은 딸이 일곱 살 되던 해였다. 남편의 사업 성과는 동업을 하던 친구의 배신으로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고, 다시 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던 부부는 순옥 씨의 고향인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 형편은 어려워졌지만 부부애가 좋았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음에 감사하며 순옥 씨는 집에서 구슬 꿰기, 빗자루 술 잇기, 인형 눈 붙이기 같은 소소한 부업으로 아이들 간식 값을 벌며 알뜰하게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수금을 하러 나간 남편이 저녁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걸려온 전화 한 통. 남편은 그렇게 허망하게 교통사고로 가족의 곁을 떠났다. 그때 순옥 씨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남편의 교통사고 사망보상금으로 600만 원이 나왔다. 600만 원 중 300만 원은 아들을 잃고 슬픔에 빠진 시댁 어른들께 드리고, 300만 원을 손에 쥐었다. 남편의 목숨 값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했지만, 두 아이와 살아갈 길을 찾아야 했다. 300만 원을 모두 들여, 방이 하나 달린 작은 가게를 계약했다. 이후 그 가게에서 과자와 장난감, 떡볶이와 호떡 등을 팔며 30년 가까이 장사를 이어갔다.
강산이 세 번 변할 세월 동안, 순옥 씨는 오로지 아이들만 생각하며 성실하게 돈을 벌었다. 그 덕에 아들, 딸은 넉넉하진 않지만 각자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고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직업을 가졌으며,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어른이 되고, 각자 가정을 일군 자녀들을 보며 순옥 씨는 엄마로서 참 잘 살아온 자신이 대견하면서도 여자로서 삶을 포기했던 지난날이 스스로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되면 찾아올 또 다른 기쁨을 꿈꾸며 자신을 다독였다. 우연히 지나가며 순옥 씨 가게에 들러 물 한잔을 얻어먹었던 점쟁이가 순옥 씨 자식들이 엄마 덕에 잘 될 거라고, 손자들과 사이도 좋은 할머니가 될 거라고 했던 말을 삶의 희망으로 여기며 되뇌곤 했다.
둘째인 아들은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귀한 딸을 낳았다. 할머니를 제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온 집안에 손녀의 사진으로 도배를 할 정도로 손녀는 순옥 씨 인생의 비타민 같은 존재다. 하지만 첫째인 딸은 손주를 낳아주지 못했다. 처음부터 낳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아니었다. 몇 해 아이를 가지려 노력해보더니 아이에 연연하지 않는 자신들만의 삶을 살겠다며 부부가 합심하여 아이 없는 삶을 선택했다.
실망감이 말도 못 하게 컸다. 결혼 후 딸이 세 번이나 유산하는 모습을 보며 차라리 내 몸이 아팠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입시를 앞두고도 장사하느라 바빠서 가지 못했던 절을 몇 번이나 찾았고 딸이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108배를 했다. 사위 몰래 부부 속옷을 가져오라고 해서 정월대보름날 달빛 아래서 불태우기도 여러 번 했다. 딸에게 한약도 먹여보고 사위에게 몸에 좋다는 진액도 매번 지어주었다.
딸과 사위가 아이를 갖지 않겠으니 부모님도 더 이상 손주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선언을 한 이후에도, 몇 년 동안 태몽 비슷한 걸 꾸면 딸의 몸을 살폈다. 자녀들이 싫어하고 부담스러워할까 봐 내색하지는 못했지만 혹시 모를 일이라며 손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 딸이 마흔 중반이 되었다. 순옥 씨도 이제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딸 부부가 때마다 여행을 가고 알콩달콩 여전히 신혼처럼 사는 모습을 보면 ‘둘이 행복하면 됐지’ 싶다가도, ‘나중에 쟤들이 늙으면 누가 보살펴 주나’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노파심에 딸아이에게 전화할 때마다 “너흰 노후에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돈을 모아야 한다, 몸을 아껴야 한다”며 잔소리를 하게 된다. 전화를 끊고 나면 괜한 말을 했나 싶지만 오늘도 순옥 씨는 딸 부부를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시리다. 언젠가 가게에 찾아와 나중에 할머니를 잘 따르는 손자들을 많이 낳겠다고 말한 점쟁이는 아무래도 용한 사람은 아니었던가 싶다.
#엄마, 순옥 씨 이야기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곗날이라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란다. 목소리가 들떠 있는 것을 들으니 안심이다.
예전에는 한 달에 한번, 엄마의 곗날은 나에겐 달갑지 않은 행사였다. 이상하게도 모임에 다녀오면 엄마의 말수는 줄었고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는 곗날이 와도 빠지는 횟수가 잦았다.
그땐 영문을 몰라 혼자 사는 엄마가 오랜만에 맛집 탐방도 하고, 친구들과 오랜 시간 이야기꽃도 필 수 있는 기회인데 왜 나가지 않으시냐고 짜증을 내며 묻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그저 귀찮을 뿐이라고 말씀했다.
어느 날 엄마와 단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궁금해서 물었다.
“엄마, 요즘 왜 계에 잘 안 나가? 누구랑 싸웠어?”
“싸우긴 뭘 싸워. 그냥 매일 똑같은 대화하는 게 지겨워서 그러지.”
그래도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엄마가 이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작정하고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무슨 대화를 하는데 지겨워? 뭔데?”
“그냥 자식들 얘기, 손자들 얘기지. 서로 자랑하기 바쁘고.”
“엄마는 자랑할 손자가 없어서 가기 싫은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아이 없는 딸을 둔 엄마의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되었다. 자녀가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하게 될 경우 부모들도 고충을 겪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신의 자녀가 아들이냐 딸이냐에 따라 부모에게 오는 질문과 시선이 달랐다. 친정엄마는 모임에 나가시면 “딸내미, 아이는?”이라는 질문을 거의 매번 받는다고 했다.
“우리 애들은 아이 안 낳고 산대. 부부 둘이서 재미나게 살겠대. 나도 그러라고 했어.”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의 대답은 늘 같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다르다.
시어머니에게는 “정말 좋은 시어머니다”, “깨어있는 부모네”와 같이 칭찬의 말이 돌아온다. 아들, 며느리가 손자를 낳아줘야 할 의무를 져버렸는데도, 탓하지 않고 지지를 하는 시어머니는‘쿨한 시어머니’로 평가받는다.
반면 친정어머니에게는 사뭇 다른 평가가 이어진다. 나의 경우처럼 처음엔 임신을 시도했지만 몇 번의 실패를 경험했던 사례에서는 더욱 그렇다. 친정엄마에게는 다그치듯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 “딸이 몸이 허약한 거 아냐?”, “한약은 먹여봤어?”, “너무 공부만 시켜서 그런 거 아냐” 등등. 그러다 끝내는 “엄마가 너무 무심하다”라는 평가로 끝난다고 한다.
엄마는 모임에 나갈 때마다 내가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것이 자신의 무관심이나 부족한 열의 때문인 것처럼 몰아가는 친구들의 말과 시선에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자녀가 결혼을 하면 부모는 손자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기 마련이다. 우리 부모님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결혼 전부터 엄마는 한 점쟁이가 손자들이 정말 좋아하는 할머니가 될 운명이라는 예언을 했다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시부모님은 맞벌이 부부인 우리가 아이를 낳으면 두 분이 육아를 전담하겠다며 미리부터 약속을 해놓은 상태였다. 손자에 대한 열망이 컸던 만큼, 양가 모두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우리 부부에게 서운함 또한 컸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 앞에서 실망감을 직접 표현한 적은 없다. 결혼한 지 3년이 지난 즈음, 아이 없이 살겠으니 이해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세분의 어른들은 놀란 눈치였지만 자식들의 선택을 존중한다며 보듬어 주었다. 요즘도 우리 부부를 만나면 종종 아이 없는 삶의 장점을 열거하며, 여러 자녀들 중 “너희가 제일 보기 좋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해주어 부모님들도 정말 괜찮은 줄 알았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일이니 사람들의 편견이나 지나친 관심도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듣기 싫은 소리에 느물 느물하게 웃어넘기는 여유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얼굴을 붉히지 않으며 현명하게 대화를 마무리하는 법도 하나씩 터득했다. 그런데 부모님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아이를 낳는 일이 여성의 의무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그 의무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당사자의 엄마에게도 책임이 전가되는가 보다. 아이를 낳지 않은 딸을 둔 친정엄마는 노력을 게을리했거나 자식을 올바르고 정상적인 길로 이끌고 설득하지 못했다는 비난의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반대로 부모의 삶도 자녀의 성공으로 평가받을 대상이 아니다. 더욱이 결혼해서 독립한 자녀의 ‘부모 되기’를 온 집안의 과업으로 보고, 이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몰아세우거나 아쉬워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부모가 되고, 안 되고의 문제는 부부의 성과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니까. 어째서 결혼한 자녀의 삶의 방향까지 부모의 책임이 되어야 하는 걸까.
누군가 내게 가장 존경하는 여성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의 엄마, 순옥 씨라고 답하겠다. 엄마가 여자로서 삶을 포기하고 자식만을 바라보며 살아서가 결코 아니다. 젊어서는 남편 없는 삶에 대해, 지금은 외손주 없는 삶에 대해 왈가불가하는 세상의 불편한 시선에 당당히 맞서고 끝내 이겨내는 멋진 여성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다시 친구들과의 계모임에 나간다. 요즘은 누군가 손주 얘기를 꺼내면 “고마운데, 내 딸 걱정할 시간에 우리 노후에 대해 이야기하자”며,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고 웃으며 넘긴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