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외의 성공 조건

출연자라는 보험에 들기

by 김주미


나는 사실 보험상품들을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

미래의 불행을 담보로 현재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편견 때문이다.


그런 나인데도 십년이 넘게 매달 꼬박꼬박 넣고있는 보험이 두 개나 있다. 내 인생의 첫 보험은 시사 프로그램을 맡아 건강보험 체계의 문제점을 취재하던 중 만난 암환우회 회원분 때문에 든 것이다. 이분의 원래 직업은 보험설계사였는데 자신에게 보험을 하나 들면 시간을 내어 취재에 응하겠다고 수줍게 요청하셨다. 그 분의 일상을 꼭 방송에 담아야 했기에 결국 보험이 하나도 없던 내가 총대를 맸다.


두번째 보험은 휴먼 다큐멘터리를 담당할 때였다. 방송국에 자주 드나들던 보험설계사가 있었는데, 소문에 그분이 사회 소외계층부터 저명인사까지 두루 아우르는 그야말로 인맥의 왕이라고 했다. 마침, 그 분과 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고 화려한 언변에 설득되어 나 역시 보험상품에 가입했다. 그 분의 도움으로 출연자 두, 세명을 소개받았으니 나 역시 남는 장사였다.


방송작가에게 평소 싫어하던 행동도 하게 만들고, 평생 가고싶지 않던 장소도 가도록 만드는 것!

바로, 섭외의 위력이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작가들은 방송에 필요한 출연자를 섭외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오죽하면 일요일 오후 밥을 먹다가 공 들이던 출연자 전화 한통에 숟가락을 던지고 나서는 나를 보고, 가족들은 죽은 첫사랑이 연락와도 저보단 반갑지 않겠단 말까지 할 정도니.


그럼 섭외에 관한 추억은 이정도 얘기하고 나만의 섭외 비법을 공개하겠다. 출연자를 섭외하는 일은 짝사랑 대상에게 어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첫째, 한번 거절 당했다고 포기하지 말자.

'열번 찍어 안 넘어오는 나무 없다'는 말은 방송계에도 유용하다. 방송에 절실히 필요한 출연자일수록 출연을 거부할 확률은 높인진다. 생각해보라. 단순히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인 정신으로 음식을 만드는 달인이라면 방송을 타서 손님이 몰리는 것을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섭외가 어려웠던 출연자일수록 방송 후 결과가 좋은 사례가 많다.

이럴 때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끈기와 뚝심이다. 한번의 섭외로 결과를 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출연자가 잊을만하면 전화해 안부를 묻는 정도로 오랜 시간 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면 출연자와 작가 사이에 어느새 우정이 생겨 우리의 부탁을 외면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둘째, 감언이설로 다가가지 말고 진실을 얘기하자.

결혼한 지인들에게 연예 시절 들었던 말들이 다 거짓이였다며 속아서 결혼했다는 투정을 많이 듣는다. 심각할 때는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신뢰가 깨져버리는 경우도 있다. 출연자와 방송 제작자 사이에도 신의를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방송 출연만 하시면 이것도 해드리겠다, 저것은 절대 안 시키겠다고 해놓고선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개인적 사연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선 방송 당일 출연자에게 당혹감과 배신감을 주는 작가는 정말 최악일 것이다. 설득이 어려울수록 정공법으로 다가가서, 방송이후 출연자의 일상은 불편하게 하겠지만 시청자들의 삶엔 어떤 영향을 줄지를 어필하자.


셋째, 방송이 끝났다고 인연이 끝난 것이 아님을 잊지말자.

이별에도 예의가 있고 떠나는 뒷모습이 더 아름다워야 하는 것은 사랑도, 방송도 마찬가지다.

가끔 방송작가들 중에 섭외를 할 때는 정성을 다하다가 방송이 끝나면 안면몰수 하는 이들이 있다. 사소한 것이지만 방송에 사용했던 사진이나 자료들을 돌려주지 않거나 방송 이후 출연자에게 생긴 불편함들을 외면하는 경우다. 세상은 좁고,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까 방송이 끝났다고 출연자와 안녕을 고하기보다는 그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방송에서 섭외를 할 때 작가들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출연자들은 방송의 소모품이 아니란 사실이다. 그들은 제작진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대신 전달해주는 고마운 메신저이고, 방송을 떠나 중요한 삶의 가치를 깨닫고 배우게 해주는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방송작가들이 섭외를 성공으로 이끄는 조건, 단 한가지는 진심으로 그들을 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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