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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Jun 10. 2019

솔직해지기, 같이 시작할까요

반짝반짝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기다리던 미드 <볼드 타입(The Bold Type)>의 새 시즌이 방영 중이다. <볼드 타입>은 '스칼렛'이라는 유명 여성 잡지사에서 일하는 젊은 세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다룬 드라마다.      


세 명의 주인공 중 '시즌 3'에서 나의 이목을 사로잡은 건 소셜 미디어 담당자인 캣이다. 캣은 새로 부임한 상사에게 소셜 미디어를 책임지는 사람답게 개인 SNS 계정을 관리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유행하는 패션을 착용하고, 유명인들이 참가하는 파티에 참석하며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셀럽의 일상 컷들을 SNS에 올린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직후라 전혀 행복하지 않다.      


SNS 속에서 멋지게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가짜라는 사실에 괴로워하던 캣은 진짜 자신의 얼굴을 SNS에 올리기로 결심한다. 화장을 지우고 슬픔으로 초췌해진 자신의 얼굴을 찍어 올리며 '#솔직해지기'란 해시태그를 남긴다. 그녀의 '#솔직해지기'는 이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늘 화려하고 멋진 사진만 올리던 젊은 여성들이 진짜 상처를 드러내는 사진을 올리기 시작한다. SNS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각자의 상처를 치유할 힘을 얻는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용기를 보여줬기에 캣은 더 많은 이들과 감정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어느 날 운동을 하는 곳에서 나를 1년 넘게 봐 온 지인이 말했다.      

“주미 회원님 글을 읽으면 제가 아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운동하러 오실 때는 너무 밝은데 글을 읽으면 분위기가 달라서 딴 사람 같아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왜 그럴까를 한참 생각했다. 사실 주위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글 속의 나에게서 더 어두운 기운을 느낀다고 말한다. 얼굴을 마주하면 유쾌하게 잘 웃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도 재미있어하는 것 같은데 글에서는 내성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자주 하는 인물로 보인다면서.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직장에서의 모습과 집에서의 모습, 편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의 표정과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어려운 사람과 만나 대화를 나눌 때의 표정이 다르다. 운동을 하러 갈 때는 최대한 기분과 기운을 끌어올리려 애쓴다. 일을 하러 나설 때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냉정한 시선으로 맡은 바 업무를 처리해 실수를 남기지 않으려 한다.      


글을 쓸 때는 어떨까? 글을 쓰기 위해 노트를 펼치거나 컴퓨터 앞에 앉으면 황량한 공간에 오로지 나밖에 없다고 상상하며 글문을 연다. 혹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이해해줄 단 한 사람이 앞에 앉아 있다는 생각으로 문장을 이어간다. 그래야 그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했지만 사실은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다.      

일상에서 나는 세상이 나에게 붙여준 이름표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쓰며 살아간다. 그러나 글을 쓸 때는 그 어떤 수식어도 의식하지 않고, 그저 마음이 내키고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손가락을 움직여 글을 쓰려한다. 더 솔직히 말하면, 방송작가라거나 책을 낸 작가라거나 강연자라거나 하는 정체성까지 벗어던졌을 때 나조차 모르고 있던 나의 속마음들을 종이 위에 옮겨놓을 수 있다.       


가끔 글쓰기 강연에서 글을 쓸 때 자신을 어디까지 드러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받는다. 글쓴이마다 사정과 상황이 다르니 단언하기 어렵다. 나의 경우에만 한정 지어 대답한다면 나는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못난 모습이라면 그 모양 그대로 꾸미지 않고 글로 표현하려 한다. 그렇게 쓴 글일수록 더 많은 독자들이 공감의 반응을 보여주었고 나 역시 글을 쓰며 과거의 나, 혹은 내면의 나와 대화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오늘도 여러 개의 SNS 계정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주변인들을 만난다. 이들의 미소 그리고 화려한 배경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 행복해 보이고 부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멋진 사진 속 그들의 이야기가 나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그보다는 그들의 상처와 실패담, 혹은 진짜 기쁨과 슬픔을 느꼈던 순간에 대한 글을 읽을 때 그이가 더 가깝게 느껴지고 강한 끌림을 느낀다.      


글을 쓸 때만큼은 '#솔직해지기'의 해시태그를 글머리에 붙여보는 건 어떨까. 비록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글을 매개로 만나는 우리 사이가, 서로에게 민낯을 보여줘도 부끄럽기보다는 반기며 안아줄 수 있는 관계가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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