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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Oct 21. 2019

고백의 글쓰기가 가진 힘을 믿습니다

나를 돌보고 타인을 위로하는 행위


남편은 나의 글을 읽지 않는다.      


결혼 후 2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 책들을 처음 만난 날, 남편은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고를 때처럼 표지와 목차, 책의 편집 상태만 스르륵 넘겨보았다.      


“괜찮게 나왔네.”      


새로 산 옷을 입고 어떠냐고 물었을 때의 반응과 다르지 않았다. 두 권의 책 모두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크서클이 사라질 날이 없게 고민하며 쓴 글이란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테니스 동호회 회원들에게 내 책을 소개하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참고로 전 아내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괜찮은 책인지 아닌지 모릅니다만, 성실하게 썼으니 돈이나 시간이 아깝진 않을 겁니다.”     


내가 쓴 글을 읽지 않는 남편에게 서운하지 않으냐고 묻는다면 아직까지는 내 글에 눈길을 주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쓴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되묻고, 내밀한 일상까지 공개하는 이유와 결과에 대해 남편이 신경을 쓴다면 글을 쓸 때 ‘거짓 없이 담담하게 쓰자’는 나의 다짐을 지키기 어려울 테니까.     


온라인 공간에 쓰는 글들은 상황이 일어난 그 찰나,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담아낼 때가 많다. 미리 기획한 책이나 논문, 청탁받은 원고를 쓸 때는 글감을 떠올리는 순간부터 퇴고까지 매 단계마다 숙고를 거듭하고 세밀한 계획 아래 글을 쓰지만 온라인 공간에 글을 쓸 때 나는 주저함이 없다. 쓰고 싶은 이야기, 쏟아내고 싶은 감정과 생각이 있으면 우선 스마트폰 메모장을 꺼내 거침없이 쓰고 본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찌꺼기 없이 후련하게 쏟아냈단 생각이 들면 다시 한번 읽어보며 노트북 마우스와 키보드 단축키를 이용해 문단의 위치를 바꾸고, 필요 없는 문장들을 과감히 삭제한다. 나를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목적에 취해 남을 해치거나 상처 주는 어휘를 쓰지는 않았는지 마지막으로 살피고 나면 ‘엔터’ 키를 누른다. 아무도 모르는 항구에 정박해 있던 은밀한 고백이라는 배가 인터넷의 바다로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순간이다.     


간혹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이 나의 글을 읽었다며 아는 체를 할 때가 있다. 이상하게 그런 반응을 들으면 볼이 빨개지고 손이 간질간질해진다. 혼자 몰래 좋아하겠다 다짐한 사람의 정체를 우연히 옆 사람에게 들켜버렸을 때처럼 당혹스럽다.      


배우자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아니 보여주지 못할 글을 나는 왜 온라인이라는 무한한 공간에 쓰고 있을까?      

나의 경우엔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속상해하는 것은 싫지만, 그렇다고 혼자 품고 있기엔 답답한 심정들을 한 줄, 한 줄 글로 써 내려갈 때가 많다. 보통처럼 살아가던 하루 중에 놓치기 싫은 감정을 만나거나 삶의 태도에 미세한 변화가 생겼을 때도 그날의 기억이 사라질까 봐 얼른 써 내려간다.     


글로 쓴 고백은 그 자체로 내가 살아낸 '흔적에 관한 기록'이 아닐는지. 내가 만난 사람이 남긴 흔적, 내가 통과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흔적, 삶을 대하는 태도를 만들어낸 경험의 흔적까지, 이 흔적들을 나무의 나이테처럼 차곡차곡 새겨 지금의 나라는 존재를 만나게 해 준다.       


신기한 일은 이렇게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써놓았을 뿐인데 얼굴도, 이름도 모를 누군가에게 내가 격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사연이나 사고와 비슷하다며 공감하는 사람들, 보잘것없는 나의 글이 도움이 되었다며 도리어 나를 지지하는 독자들이 어딘가에 존재한다. 고백의 글쓰기는 새로운 글벗을 만들고 교감의 기쁨을 누리게 하는 선물까지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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