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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가 아닌 방향이 중요해요

필라테스와 글쓰기의 닮은 점

by 김주미

필라테스를 시작한 지 어느덧 2년이 되었다.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만 쳐다보며 앉아있다 보니 목과 허리의 통증이 날로 심해졌다. 평소 즐겨하던 수영이나 헬스도 몸이 더 아플까 봐 다시 시작하기 무서웠다.


그때 누군가 필라테스는 원래 재활 치료를 위해 탄생한 운동이라 척추를 교정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몇 해 전 요가를 하다 오히려 허리를 삔 적이 있어 처음엔 망설였다. 모든 운동이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따라 하면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겠지만 나의 경우엔 늘 과도한 열정이 문제였다. 요가를 할 때도 앞줄에 선 20대 아가씨처럼 유연하게 동작을 해 보이겠다며 허리를 접고 과욕을 부리다가 순간, 눈앞에 별이 보이더니 ‘악’하는 비명소리를 내고 꼬꾸라지고야 말았다.


‘이번엔 정말 욕심내지 말아야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속도로 배워야지!’라며 다짐을 거듭하고 필라테스 센터를 찾았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씩 나만의 길고 긴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필라테스를 배우는 동안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다. 먼저 두, 세 달에 한 번씩 운동한 후 몸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사진 촬영을 할 때마다 고비였다. 누구는 휘어 있던 척추도 바로 세워졌다고 하고, 또 누구는 체중이 놀랄 만큼 줄었다는 소식이 들렸고 이는 고스란히 ‘비포 & 애프터 사진’으로 드러났다.


나의 경우엔 목이나 허리 통증도 줄고, 몸도 단단해졌다고 스스로는 느끼고 있었지만 막상 촬영을 하면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다. 그때마다 더 열심히 센 강도로 운동해야 하나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운동이 아니니 괜찮다고, 스스로 몸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면 충분하다고 토닥이며 끓어오르는 욕심을 잠재웠다.


다음 고비는 다른 회원들이나 선생님과 함께 운동을 할 때 찾아왔다. 나는 몸에 남아있던 힘들을 쥐어짜서 겨우 해내고 있는 동작을, 옆 사람은 가볍고 경쾌한 리듬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횟수를 늘려가는 것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다. 내 딴에는 선생님이 시범을 보이는 동작 그대로를 재연했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았는데, 세상에서 제일 못난 표정을 지으며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운동 시간을 늘려볼까 하는 생각과 반대로 필라테스를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교차했다. 다행히 무리하지도, 멈추지도 않고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필라테스를 가는 날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운동을 끝내면 드는 상쾌한 기분에 취하기도 한다. 선생님에게 칭찬받은 동작들은 사진 촬영을 했다가 남편에게 수줍게 자랑하는 일도 생겼다. 이제야 필라테스를 하는 ‘나만의 속도’를 찾은 느낌이랄까.


필라테스를 하면서 이 운동이 글쓰기 과정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필라테스는 혼자서는 하기 힘든 동작들을 여러 가지 기구의 도움을 받아 좀 더 수월하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이다. 글쓰기도 비슷하다. 당장 글을 써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없다면 내가 써야 하는 글과 비슷한 분위기의 음악을 듣기도 하고, 다른 작가의 글이나 화가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기도 한다. 딴생각이 많아져 몰입이 힘들 땐, 왠지 글이 더 잘 써질 것 같은 필기구를 꺼내 쓰기도 하고, 적당한 백색소음으로 둘러싸인 카페 구석자리에서 나만의 집필 공간을 만들어 집중을 돕기도 한다.


필라테스와 글쓰기가 맞닿은 부분은 또 있다. 필라테스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내 몸의 세부 근육과 골격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고 이를 마음먹은 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글쓰기도 단련을 거듭하다 보면 작가로서 나의 장점이나 특성들이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는 날이 오고, 자신이 써야 하는 글의 종류나 상황에 따라 그동안 키워온 나만의 글쓰기 근육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


자신만의 속도를 발견해야 오래갈 수 있다는 것도 필라테스와 글쓰기의 공통점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지만 그 발전 속도가 더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법서 한 권만 읽어도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글을 쓰거나 공모전에서 턱 하니 수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 아닐까. 지금 당장의 실력 향상이 아니라, 지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나만의 속도를 찾아야 어떤 고비가 와도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옆 사람에 비해 뒤쳐져 보여도 6개월이 지나고, 몇 년을 이어가다 보면 과거의 나에 비해 한참 높이 와있는 성장한 나를 발견하는 날이 온다.


지금은 필라테스를 곧잘 하냐고? 물론 아니다. 간혹 선생님의 칭찬을 받는 날이 있긴 해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자랑할 만한 운동 실력이 아니고, 몸 또한 운동을 시작한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믿는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감동을 주는 것은 거북이의 느린 걸음으로 이뤄낸 완주가 아니냐며, 나의 중년의 레이스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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