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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롱을 줄게요

마카롱 따위가 위로가 될 수는 없겠지만.

by 김주미


멀미를 하듯 가슴이 울렁거리고 코와 입으로 내뱉는 숨이 발아래로 하염없이 떨어지는 날이 있다. 작은 부피의 짐조차 버겁게 느껴지고 주먹을 쥘 힘마저 남아 있지 않은 날,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그런 날에 나는 마카롱을 사러 간다.


마카롱의 겉을 감싸는 ‘크러스트(crust)’는 어린 시절 한 입 베어 물면 바싹하고 깨지며 입 안에서 사르르 녹던 달고나의 식감을 닮았다. 마카롱 속 크림인 ‘필링(filling)’은 폭신한 솜이불 같아서 입술을 대는 순간‘포옥’하고 꺼지며 혀 끝까지 편안함을 선물한다.


작고 동그랗고 어여쁜 마카롱을 집는 순간은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는 말이

내게 필요하단 뜻이다. 주저앉고 싶던 나를 추켜세우는 방법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나이 들던 중, 그렇게 나는 마카롱이 지닌 비밀의 맛을 알게 되었다. 몸과 마음의 노곤함을 달래기에 이만큼 확실한 방법이 또 있을까 싶다.

어느 날인가 아홉 살 조카가 카페에 앉아있는 사진을 보내주었다. 조카의 손에는 마카롱이 들려 있었다. 이 녀석이 어느새 커서 마카롱을 먹는구나 하고 반가웠다. 다음번에 만났을 때 마카롱이 좋으냐고 묻자, 조카는 마카롱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기뻤다. 이제 조카와 함께 나눌 수 있는 감정과 말들이 더 많아질 테니까.


보름 전, 조카가 동생이라 부르며 4년을 함께 살아온 고양이를 잃어버렸다. 현관 문이 잠깐 열린 사이에 집을 나간 모양인데 이제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고양이 탐정이라는 전문가들에게 의뢰도 해보고 전단지도 붙였다. 한참 동안 동생 부부는 밤이 오고 새벽이 되면 고양이를 찾아 아파트 단지와 인근 산을 헤매고 다녔다. 동네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이라며 불편한 시선을 보내도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안타까워 또 집을 나섰다고 한다. 고양이를 잃은 슬픔에 몸과 마음이 약해진 탓일까. 조카가 며칠 전부터 장염으로 고생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상실감을 처음 경험했을 이 아이에게, 그리고 고양이를 찾지 못해 애만 태우고 있을 동생 부부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이만큼 나이가 들어도 타인을 위로하는 법은 어렵고 서툴기만 하다.


어쭙잖은 위로의 말이 그들을 더 허탈하게 하거나 상처를 남기지 않을지 걱정이고, 내가 당사자가 아니니 어떤 마음일지 쉬이 헤아려지지도 않아 어깨를 다독일 용기도 나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할 수 없이 나는, 마카롱을 사러 갔다.


마카롱을 한입 먹는다고 단번에 기분이 나아지진 않겠지만 달리 무엇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기에. 마카롱의 식감과 달콤함으로 찰나의 순간이라도 삶의 쓴맛이 희석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 포장해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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