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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 바다에 가면

넌 늘 내 편이었지.

by 김주미

광안리 바다는 나에게 특별한 장소다. 광안리 바닷가와 내가 다닌 대학은 가까웠다. 매끈하게 바다를 가로지르며 그 위용을 자랑하는 광안대교가 아직 세워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내가 다닌 단대 건물은 학교에서도 후문 쪽에 위치해 바다에 더 빨리 닿을 수 있었다. 후문에서 쉬지 않고 30분을 내달려 걸으면 바닷가가 보였다. 바다 가까이에 교정이 있으니 문득문득 낭만에 젖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실바람이 불어오는 날이면, 수업을 듣다 쉬는 시간 잠깐 창문을 열어 짭조름한 바람 한 모금을 삼키며 잠을 깨웠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운동장의 모래가 움푹 파여 생긴 웅덩이로 갈매기 한, 두 마리가 날아와 기웃거리며 정겨운 풍경을 연출했다.


대학 시절 낭만의 절정은 역시 땡땡이와 낮술이 아닐까. 벚꽃 피는 봄날에는 친구의 꼬임에 못 이기는 척 일어나 수업을 결석하고 벚꽃길을 따라 바다로 향했다. 백사장에 다다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팔을 벌려 ‘프리덤’을 외치며 바다 위 반짝거리는 햇살보다 더 빛나는 스무 살을 과시했다.


광안리 바닷가에서 짝사랑하던 선배에게 서툰 마음을 표현했다가 동아리 사람들에게 들켜 일 년 내내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고, 해 질 녘 백사장 위에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기타를 치면서 평생 간직할 추억 한 장면을 가슴에 새기기도 했다.


광안리는 스무 살의 나에게 청춘의 찬란함으로 물든 곳이었다.


몇 년 후 다시 그 바다를 찾았다. 혼자였고 바람은 살을 파고들어 차가웠다. 밀려오는 파도의 철썩거림은 내 마음의 상처를 헤집고 들어왔다.


대학 졸업 후 방송작가 일을 시작했고 세 번째 직장으로 광안리 바닷가와 가까운 방송국을 선택했다. 방송국을 옮긴 후 몇 년은 꽤 힘들었다. 막내 작가 때부터 한 방송국에서 성장하며 동료애를 다진 다른 작가들로부터 텃세를 받았고, 특채로 들어온 작가에게 뭔가 기대했는데 별 것 없다며 PD들은 면전에서 실망감을 표했다. 그럴수록 잘하고 싶은 욕심은 컸으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 글은 더 형편없어졌다. 몸은 말라가고 마음은 뾰족해지고 있었다.


어느 날은 혼자 점심을 먹고 방송국에 들어가기 싫어 무작정 걷다 보니 광안리 바닷가에 도착했다. 외롭고, 춥고, 두려운 오후였다. 초점 없는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한껏 바닷바람을 마셨다. 가슴 밑바닥까지 청량함이 전해졌고 누군가에게 인공호흡을 받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힘이 들어 어깨가 처지고 혼자 있고 싶은 날이면 걸어서 바다까지 갔다. 패배감으로 채워진 내 몸속 공기를 모두 빼내 손가락, 발가락 끝까지 바다가 주는 새 기운을 밀어 넣었다. 그러면 공기를 넣어 빵빵해진 풍선 인형처럼 다시 일터로 향할 용기가 생겼다.


광안리 바다는 서른 살의 나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다져주는 위안의 장소였다.


마흔넷의 나는 다시 그 바다 앞에 앉아있다. ‘너 참 오랜만이구나!’라며 바다가 귓가에 속삭인다.

지난 몇 달은 누구에게도 내색하기 어려웠지만 퍽 고달픈 시간이었다. 앞만 바라보며 달려오다 무엇이 어긋났는지 눈치챌 사이도 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다시 달릴 수 있는 동력을 잃었다. 내가 멈춰 서길 기다렸다는 듯 엄마가 아프셨고, 숨을 몰아쉬며 가파른 하루를 보냈다. 겉으로는 담담한 척했지만 속에선 억울하고 속상한 감정들이 쌓여갔다.


엄마가 퇴원하시고 일상이 제자리로 돌아온 듯했지만 한번 어긋난 마음은 어지러운 상태 그대로였다. 가장 큰 피해는 가까운 가족에게 돌아갔다. 별것 아닌 말에 짜증을 내거나 버럭 화를 내는 일이 잦았다. 텔레비전을 보다 물색없이 눈물이 흐르거나 영화를 보다 혼자 주책맞게 큰 소리로 웃어대서 주위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아, 내 마음이 고장 났구나’ 스스로 깨닫는 사이, 남편도 그런 나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여보, 나 좀 이상한 것 같아. 감정이 내 맘대로 안돼. 자꾸 후회할 일을 만드네.”


남편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너 요즘 좀 그래. 이제 일도, 어머니도 괜찮아졌으니 너 자신을 좀 돌보는 게 어때? 좀 쉬어도 되니까 마음을 편히 가져.”


다음날 정해진 일정들을 모두 취소하고 무작정 바다를 찾았다. 광안리 바다 앞에 앉아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이 푸념들을 꺼내 놓았다. 밀려오는 파도에 세상을 향한 질문과 원망들을 하나씩 실어 보내기 시작했다. 한숨을 연거푸 쉬고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쳐내는 나에게 왜냐고 묻지도, 서툰 위로를 꺼내지도 않고 가만히 듣기만 하는 바다는 너른 품을 가진 친구 같았다. 모래 아래 덮어두었던 청춘의 날들을 살며시 꺼내 주며 지금까지 잘 해왔다고, 그러니 앞으로도 너무 걱정 말라며 오늘도 나를 토닥여주고 있었다.


돌아보면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줄 것이란 생각이 들 때마다, 나도 모르게 바닷가로 걸어갔다. 찬란한 나라도, 초라한 나라도 다 괜찮다고, 어떤 모습이라도 등 돌리지 말고 스스로를 따스하게 안아주라고 말하는 바다의 위로를 듣고 싶어서였겠지.


이제는 안다. 도망치고 숨는 것도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어른이 되어도 살다가 지치고 사람을 피하고 싶을 때면 이불 속이나 동화 속 동굴처럼 숨을 곳이 필요하다. 그곳에서는 마음의 새살이 차오르고 젖은 감성도 뽀송하게 말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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