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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Mar 20. 2018

방송작가의 오만과 편견에 관한 고백

색안경을 벗고 직접 경험해보다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남들에게는 차마 꺼내기 부끄러운 경험이 몇 차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부산에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한 대안학교가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팀은 이 학교에 자녀를 보낼 다문화가정들을 취재하기로 했다. 그렇게 학교 측에서 추천해준 가정들 중에 두루가씨 가족이 있었다.     


처음 두루가씨의 집을 방문했을 때, 집에는 두루가씨와 아이들만 있었다. 방 안에 걸어둔 가족사진을 보니, 두루가씨와 남편은 한 눈에 봐도 10살 이상 차이가 나 보였다. 사진을 보며 ‘이 부부도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결혼을 했구나.’하고 지레짐작을 했다. 다문화가정을 취재할 때, 어떻게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됐냐는 질문이 오히려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 같아, 나는 다문화가정 부부들에게 만남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다문화가정은 경제적, 문화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거운 질문들만을 늘어놨다.     


그 때였다. 내 질문에 묵묵히 답을 하던 두루가씨가 갑자기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물어왔다.    


“근데, 몇 살이세요?”    

“저요? 서른 살요.”    

“어머, 그럼 나보다 언니네!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근데 방송 만들려면 원래 이런 질문만 해야 돼요?”    

“네? 왜요? 받고 싶은 질문이라도 있어요?”    

“아니, 우리 가족을 촬영하려면요, 가족 소개도 하고, 우리 부부가 어떻게 만났는지 연애 시절 이야기도 하고, 시어머니랑 나랑 친해진 과정도 얘기하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 에요?    


순간, 번쩍했다.     


나는 앞에 앉은 두루가씨에게 질문을 한 것이 아니라 내 상상 속에 있는, 힘겨워하는 결혼이민여성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시간여동안 그녀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고 있었다. 두루가씨의 날카로운 지적을 받은 후, 나는 취재수첩을 덮어두고 마주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환한 미소와 경쾌한 목소리로 쉴 새 없이 얘기하는 두루가씨는 마치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씩씩한 동네 여동생 같았다.    


스물아홉 살의 그녀는 네팔에서 왔다. 한국에 있는 남편과 사진을 주고받으며 정을 쌓았다는 두루가씨. 이후 남편을 사랑하게 됐고 결혼을 결심했지만 당시, 마을 대표로 무척 엄했던 친정 아버지는 귀한 딸의 한국행을 허락할 리 없었다. 결국, 두루가씨는 가족들 몰래 사랑을 찾아 한국행을 결심했고, 세월은 어느덧 10년이 흘러 지금은 아홉 살이 된 아들과 여덟 살의 딸을 둔 한국 아줌마가 됐다. 누구보다 유쾌한 성격 때문에, 한국말과 문화에 빨리 적응했고 이제 동네에서는 명물로 통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감초 같은 존재가 됐다.    


그날 이후 두루가씨와의 인연은 계속됐다. 그녀는 대안학교 학부모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다른 엄마들까지 모아서 한국어 배우기를 주도했다. 웃음과 애교가 넘치는 두루가씨는, 어디서든 밝은 기운을 만드는 미소천사였다. 그런 그녀가 카메라를 향해 단 한번, 눈물을 보인 적이 있었다. 아들 진호가 어느 날, 친구들과 놀다가 와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고 했다. 아들을 달래 이유를 들은 후, 두루가씨는 자신 역시 눈시울을 붉혔다고 했다.      


“아이들끼리 말과 당나귀, 노새가 뭐가 다른지 얘기하고 있었데요. 근데 갑자기 한 친구 가 우리 진호보고 ‘말하고 당나귀하고 섞여서 노새가 태어나니까, 너도 노새네.’ 하며 놀렸다는 거예요. 한 친구가 그러니까, 다른 친구들도 ‘니네 엄마는 맨발로 다니는 후진국에서 왔다며?‘하고 계속 놀리더래요. 저 때문에 아이가 상처받는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해요.”    


하지만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우울해하고 있을 두루가씨가 아니었다. 그녀는 아들과 딸을 앉혀놓고 엄마가 한국인이 아니라고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아직 친구들이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니 다음엔 너희들이 알려주면 된다고 또박또박 설명했다. 역시, 씩씩한 두루가씨였다.     


이민자나 이방인에 대한 편견 때문에 당혹감을 느꼈을 두루가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내게도 일어났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평소 운동복에 관심이 많은 남편과 나는 파리 중심가에 있는 유명 스포츠 브랜드 매장을 방문하였다. 한국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제품들도 팔고 있어서 둘 다 즐거워하며 가게 안을 활보했다.  그러다 알 수 없는 부담감과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덩치가 크고 인상이 무서운 보디가드들이 곳곳에 서있었는데, 대부분 우리 부부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한 남성이 다가오더니 남편에게 불어로 말을 걸었다.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의 말투가 어찌나 위협적인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더듬더듬 영어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다른 동료를 한 명 더 부르더니 다짜고짜 남편의 몸을 수색했다. 어찌나 당황하고 화가 났던지, 영어로 항변했지만 나조차 무슨 말을 내뱉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린 영어로 항의하고 그들은 불어로 대응하며 고성이 몇 번 오갔고, 대충 파악한 진상은 이랬다. 최근 매장에 아시아인들이 다녀가고 나면 꼭 물건들이 없어져서 보안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불쾌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 억울함을 뒤로 하고 매장을 나서야 했다.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이 얼마나 폭력적인 행위인지 그제 서야 체감했다.


누군가를 카메라에 담을 때는 제작진의 편견의 시선이 담기지 않았는지 늘 경계해야 한다.


글을 쓰거나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작가들도 의도하지 않게, 작품 속에서 많은 대상들을 부정적으로 정형화 하여 그리고 있다. 드라마는 남성 노인을 현명하고 지혜로운 인물로 그리는 반면, 여성 노인은 대체로 이기적이거나 무식하게 묘사한다. 청소년들, 특히 ‘중2’는 감정에 휘둘리기 싶고 어른들에게 반항적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하나의 이미지로 덧씌워 버린다. 결혼을 통해 이주한 여성들은 한국 전통문화를 반드시 배워야 하고, 가족에게 희생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강요한다. 여러 작가들이 작품의 주제로 평등과 인권을 중요하게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다른 문화나 타인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존중해주려는 노력은 여전히 많이 아쉽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방송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이와 같은 조언을 수없이 들었다. “직접 만나보고, 진짜 해봐야 작가가 자세히 쓸 수 있지”라고들 했다. 사실, 다양한 일들을 실제로 해 보거나 겪어 보면 그만큼 깨닫게 되는 바가 크다.  그래서 많은 작법서에서 새로운 환경과 일, 사람들을 힘닿는 대로 경험해보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그러나 직접 경험해본다고 무조건 생생한 글쓰기가 가능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뭐든 경험하는 데에는 시간과 돈, 그리고 공이 든다. 비효율적이기도 하고, 경험에 앞서 그 환경이나 사람들을 이해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성과는 없을지 모른다. 직장 내 성차별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당장 한 회사에 취업해 현실을 체험하는 것도 좋겠지만, 관련 통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통찰력을 발휘하여 숨은 의미를 찾아내거나 ‘만약 나라면’ 이라는 가정 아래, 글 속 대상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진심으로 공감해보려는 시도를 통해서도 진정성 있는 글을 쓸 수 있다.     


그래서 글쓰기에서 필요한 직접 경험이란, 물리적 경험이 아니라 심리적 경험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 쓸 대상에 감정이나 정신을 이입해 본다면, “이 사람은 이럴 거야”라고 쉽게 단정 짓지 못하게 될 것이다. 대상을 보다 깊이 알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고, 작품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약자나 악인 등 부정적 인물로 표현하더라도 왜 그런 특성을 가지게 됐는지 독자나 시청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할 것이다.     


두루가씨를 처음 만난 지 십년이 흘렀다. 그녀와의 만남은 짧았지만,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은 참으로 크다. 이후 방송을 제작하면서 그동안 외면했던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하나의 이슈에 대해 여러 가지 시각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방송 일을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하면서는, 결혼이민여성들이나 노년의 삶, 그리고 질병 등이 미디어에서 어떻게 재현되는지에 대한 논문을 썼다.


색안경을 벗으니 타인의 고민을 나의 고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생각하고 질문할 거리를 던지는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러니 편견이나 선입관이라는 허물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당장 벗어던져 버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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