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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Apr 03. 2018

방송 일의 고단함을 견디는 방법

마음의 은신처를 마련하자!


며칠 전,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고흐가 그린 ‘우체부 롤랭의 초상’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는 지인이 이 책을 선물해 주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우체부 조셉 롤랭을 통해 주고받았을 고흐의 편지들과 그림들을 선별해 엮은 책이다. 오래전에 읽은 기억이 있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읽으니 그가 남긴 그림과 글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한 화가의 일상을 지배했을 창작에 대한 목마름과 고뇌를 조금 더 공감할 수 있게 됐다고나 할까.


반 고흐는 생전에 879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가 그림을 그리겠다고 결심한 것이 그의 나이 스물일곱, 권총으로 자살한 때가 서른일곱 살 때이니 단 9년 만에 이 같은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어림잡아 1년에 백여 편을 그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니 그의 작품에 대한 열정이 놀랍다. 많은 미술 비평가들은 그의 태양 같은 창작 욕구는 동생 테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테오는 반 고흐가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경제적, 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반 고흐 역시 테오를 얼마나 의지했는지, 그가 테오에게 남긴 668통의 편지들을 통해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어쩌면 테오에게 편지를 쓰는 그 순간이, 늘 불안에 떨던 고흐가 진심을 표현하고 위로받는 유일한 치유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반 고흐처럼,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치유하는 자신만의 은신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방송 일을 하다 보면 불안과 부담감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개편 때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하고, 매주 다른 아이템들을 찾아내야 하며, 많은 사람들과의 협업 속에서 긴장감을 가지고 창작물을 완성해 나간다. 어디 그것뿐인가? 방송 후에는 시청률이나 시청자 의견, 동료들의 비평이라는 후폭풍을 감내해야 한다. 그렇기에 방송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힘든 순간을 견디게 하는 은신처는 꼭 필요하다.     


20대 방송작가 시절 나에게 은신처가 되어 준 것은 ‘재즈댄스’였다. 어릴 때 무용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포기했다. 처음엔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있다 보니 점점 굳어가는 몸을 풀기 위해 재즈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재즈댄스를 하는 시간은 나에게 힐링의 시간이 되었다. 여러 동작을 몸에 익혀 음악과 어울리게 춤을 추기 위해서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때까지 춤을 추고 나면 몇 시간 전까지 섭외 때문에 무겁기만 했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재즈댄스는 그렇게 다시 방송 현장으로 돌아갈 용기와 에너지를 주었다.    


하지만 무용 전공자가 아니면서 무리해서 춤을 추다 보니, 결국 관절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고 재즈댄스를 그만둬야 했다. 그래서 30대 방송작가 시절, 새로운 도피처로 선택한 것이  ‘퀼트 공예방’이었다. 경력이 쌓이면서 난 여러 명의 서브작가와 함께 일하는 메인 작가가 되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후배들을 다그치기 일쑤였고 기대와 실망감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엔 후배들과 함께 하는 취미를 만들었다.


마침 방송국 앞에 70대 백발의 할머니가 하는 퀼트 공예방이 있었다. 퀼트 선생님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일본에서도 전시회를 열만큼 유명한 퀼트 장인이었다. 점심을 먹고 오다 전시된 작품들에 시선을 뺏겨 즉흥적으로 등록을 했지만, 우리는 한동안 꽤 열심히 공예방을 다녔다. 방송을 만들다가 짬이 나면 손을 잡고 퀼트를 배우러 달려갔다. 거기선 우리 팀 막내 작가가 바느질 솜씨가 제일 좋았다. 막내 작가의 작품을 보고 감탄하고 서로 옆에 앉히려고 애교를 떨기도 했다. 그러면서 낮에 일을 하며 서운했던 마음들이 밤에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며 풀리기도 했고, 퀼트 지갑과 가방 등을 완성하며 우리의 동료애도 두터워졌다. 퀼트 공예방은 어느새 타인을 이해하게 만들고, 나에겐 위로를 주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40대가 되고,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아진 나에게 요즘 은신처가 되는 것은 ‘부치지 않을 편지’를 쓰는 행위이다. 우연히 <치유의 글쓰기>라는 과정을 강의하면서 수강생들과 함께 여러 방식으로 글을 써보다가 나에게는 ‘편지 쓰기’가 가장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편지 형식으로 글을 쓰면, 누군가 읽을 대상을 선정하고 글을 쓰기 때문에 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끝내 그 사람에게는 보내지 않을 편지를 쓰기 때문에 마음속 깊이에 있는 진심을 꺼내 쓸 수 있다.


보내지 않겠다고 전제하고 편지지에 한 줄씩 속내를 써내려 가다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위로를 얻기도 한다.


때로는 서운한 마음이 드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며 원망을 쏟아내기도 하고, 때론 그리운 이에게 펜을 들어 추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고등학생인 나에게, 혹은 노년이 된 나에게 편지를 쓰며 현재 겪는 아픔이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하루 30분 정도 시간을 내어 편지 쓰기를 비롯한 치유의 글쓰기를 꼭 하려고 애쓴다. 예전엔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론 부담스럽던 글쓰기가 지금은 나도 미처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며 지친 마음을 쉬게 하는 과정이 되고 있다.    


언젠가 후배들을 위한 특강에서 “방송 현장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 불안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는 멋진 선배로 보이고 싶은 생각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불안이 클수록 나중에 맛보는 성취감 또한 크다.”라고 대답했다.     


고백하건대, 새빨간 거짓말이다!


불안이나 두려움은 결코, 즐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불확실성이 큰 방송 현장에서 내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 작품 실패가 불러올 결과에 대한 공포는 24시간 나를 따라다닌다. 그러니 이를 즐기겠다고 쓸데없는 호기를 부리는 대신, 차라리 잠시라도 수많은 걱정들로부터 도망쳐 숨을 수 있는 나만의 은신처를 만드는 편이 낫다.


그것이 비밀의 공간이어도 좋고, 자신의 내면과 대화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어도 좋으며, 반 고흐에게 테오가 그러했듯, 나의 절망과 희망을 이해하는 단 한 사람이라도 좋다. 마음의 은신처에서 스스로 치유할 기회를 충분히 준다면, 상처 위에 딱지가 앉듯 또 일상을 견딜 수 있는 새로운 힘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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