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가슴 라인까지 내려오는 긴 곱슬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과 가녀린 몸, 애써 괜찮아 보이려 애쓰는 표정과 어두운 그늘이 서려 있는 얼굴의 여울은 오늘도 같은 시각에 집 근처에 있는 카페를 찾았다. 여울은 늘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커피를 받아 카페의 2층으로 향한다. 카페의 2층에는 큰 통유리창에 바깥 풍경이 보이고 창가 쪽을 바라보며 앉을 수 있도록 길게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여울은 얼마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 초록 물결의 잔디와 무성한 잎들이 살랑거리는 나무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았던 이곳을 좋아하게 되었다. 여울은 창가 쪽 테이블에 가장자리 끝에 앉는다.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담긴 하얀색 커피잔을 앞에 놓아두고 여울은 바깥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늘도 바깥 풍경은 너무도 따사롭고 화창했다. 여울은 그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것들을 응시했다. 이곳이 마음에는 들었지만 통유리창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왔다기보다는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기 위해서 왔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풍경을 바라보지만 여울의 눈 안에 그것이 담기지 못하고 이내 마음이 흩어져 그녀가 가진 슬픔들이 뭉글뭉글하게 스며 나올 것 같았다. 따뜻했던 커피의 온기가 사라져 갔을 때쯤 커피 한 모금으로 입을 축여낸다. 무엇인가를 먹기 위해 음식을 넣으면 모래알 씹는 것 같았고 입맛도 없어서 거의 끼니를 거르다시피 했다. 약을 먹기 위해 겨우 인스턴트 밥을 데워 흰쌀밥에 물을 말아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고는 카페에 와서 마른 입을 커피 한 모금으로 적셔낼 뿐이었다. 지금의 여울은 살아있지만 죽어 있는 것에 가까웠다. 삶을 살기 위한 어떤 행위에도 열의가 없었다.
우울감이 심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결국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새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이복동생 채령이와 같이 살던 집에서도 나왔고 살던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이곳에 방을 하나 얻어 월세로 지내기 시작했다. 말도 없이 나왔고 그 어떤 연락도 받지 않았다. 아니 연락을 받지 않았다기보다는 그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새아버지는 여울과는 대면 대면한 사이였고 엄마는 어렸을 적부터 여울을 살갑게 대해주지도 애정을 쏟지도 않았으며 이복동생 채령은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여울과는 관계가 좋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었지만 여울이 기댈 곳은 없었고 크게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여울은 기대했었다. 가족들이, 아니 자신의 엄마가 자신이 사라졌다면 찾아 나서기를. 그러나 한 달이 지났음에도 엄마는 전화 한 통 없었다. 늘 엄마는 그런 무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울은 상처를 받았다. 아마 채령이가 사라졌다면 이러지 않았을 거라는 것을 여울은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상처로 다가왔고 그것은 여울에게 있어 오랜 결핍으로 머물렀다. 여울에게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좋아하던 동네 오빠가 있었다. 그 오빠는 여울을 친동생 이상으로 챙겨 주고 옆에 있어 줬다. 고민을 들어주고 외로운 여울의 마음을 채워 주는 사람이었다. 여울은 그 오빠를 오랫동안 좋아했고 사랑했다. 성인이 되고 그 사랑하는 마음은 더 부풀어 연인이 되고 싶었다. 오빠가 보인 말과 행동도 자신을 향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여울의 착각이었는지 오빠는 어느 날 이복동생 채령이의 남자 친구가 되어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엄마도 오빠도 모두 채령이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했다. 그 상실감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오래 꾹꾹 참아내고 참아냈던 우울과 슬픔들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와 걷잡을 수 없었다.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았다. 자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은 없다고 스스로를 부정했다. 그 부정의 끝에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까지 머무르게 했다. 매일이 슬프고 또 슬펐다.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렸는데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심한 우울감으로 가슴도 답답해져 왔고 급기야 숨을 쉬지 못해 과호흡이 오기도 했다.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여울은 스스로 정신과 진료를 받으러 갔고 우울과 불안으로 인한 공황장애로 진단받았다. 여울은 모든 부분에 의기소침해졌고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 숨고 싶었다.
여울이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을 때 그녀에게서 조금 떨어진 옆자리로 준서가 앉는다. 준서는 이 북 카페의 사장이다. 준서는 책과 노트북 그리고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블 위해 올려놓는다. 노트북을 열고 전원 버튼을 누른다. 그러고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가져온 책을 펼친다. 책은 수요일 저녁 독서 모임에서 같이 읽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이다. 준서는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한다. 이 북 카페는 준서가 꿈꾸던 것이 모인 곳이자 이루는 곳이었다.
준서는 좋아하는 것들만 하고 사는 삶을 꿈꿨고 지금은 그 과정 속에 있다. 친한 동생인 ‘이현’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책을 판매하고 독서 모임을 하고 한가로운 시간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날이 좋은 날에는 카메라를 들고 바깥으로 나가 이것저것 시선에 담긴 것들을 찍기도 한다. 준서의 나이는 스물여덟이었고 여울보다 두 살 위였다. 준서는 부족함 없이 유복하게 컸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혼자였지만 준서에게는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도록 많은 사랑을 주고 키워주신 조부모님이 계셨다. 할아버지는 현명한 가르침으로 할머니는 늘 따뜻한 사랑으로 품어 주었기에 준서는 큰 상처 없이 단단하게 자랐다. 삼촌의 카페에서 바리스타 직원으로 일하며 경험을 쌓았고 할아버지가 주신 자본금으로 북 카페를 운영하게 되었다. 매달 수익의 일부를 할아버지에게 상환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자본금을 갚고 있다. 할아버지는 어차피 준서에게 물려줄 재산이라며 받으려 하지 않으셨지만 준서는 이렇게 해야 스스로 독립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자본금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살고 있는 집부터 지금까지 부족함 없이 공부하고 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조부모님의 덕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번 돈의 일부가 얼마 되지 않더라도 드리고 싶었다. 준서는 <노르웨이 숲> 책을 덮고 노트북에 타이핑을 치기 시작했다. 요즈음 에세이를 꾸준히 쓰고 있다. 자신만의 감성으로 그려낸 글들을 모아 책을 내려고 한다. 그래서 카페가 한가로운 시간에는 이현에게 카페를 맡겨 두고 카페에서 글 쓰는 시간을 갖는다. 한참을 타이핑을 치다가 생각에 잠겨 창밖을 바라본다. 바람의 살랑거림에 초록 잎들이 흔들거림이 연둣빛 잔디가 사르르 하는 것이 기분을 좋게 했다.
준서는 따뜻한 햇살과 파란 하늘의 조화에 매료되어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무심결에 옆을 보게 되었고 자신과 같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여울을 보게 되었다. 옆선으로 느껴지는 여자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자신과는 많이 다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무엇인가를 바라보지만 눈에는 초점을 잃은 듯했고 그 눈에서 눈물이 맺혀 한쪽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준서는 고개를 돌려 다시 창밖을 보았다. 울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단지 왜 울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슬픈 일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떠한 슬픈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인지 말이다.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사정을 물어볼 수도 없을뿐더러 왠지 모르게 충분히 슬퍼하게 해주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준서는 조용히 책과 노트북을 정리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리를 피해 주는 것이 알지는 못하지만 그 슬픔은 존중해 주고 싶은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해서였다. 준서는 짐을 챙겨 1층으로 내려왔다.
“어? 형! 오늘은 웬일로 일찍 내려왔어? 글이 안 써져?”
이현이 준서에게 묻는다. 한번 글 쓰러 올라가면 2시간 이상은 있다가 내려오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내려왔기 때문이다.
“왠지 오늘은 일찍 일어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하며 준서는 다시 한번 2층에서 울고 있을 그녀를 생각했다. 사실 그녀를 오늘 처음 본 것은 아니다. 2주 전부터 2층에서 글 작업을 하기 위해 올라가면 항상 같은 자리 그녀가 먼저 앉아 있었기 때문에 볼 수밖에 없었다. 2주 동안 앉아 있는 그녀의 뒷모습만 보았지 얼굴을 제대로 본 적도 없었고 그곳에서 혼자 앉아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다. 아무 흐느낌도 없이 눈물만 떨궈내던 그 옆선이 준서는 계속 신경이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