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우리 부부가 따로 살 집을 구한 기준은 오로지 '돈'이었다.
사실 선택의 여지조차 없었다.
출입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 나오고,
바깥의 공용 화장실을 써야 하는 단칸방. 지금 누군가에게 말하면 기함할 환경이겠지만 그땐 그게 최선이었다.
직장 3년 차였던 남편과, 간호사로 일하며 월급을 통째로 친정에 보냈던 나에게 수중에 쥔 돈이라곤 없었기 때문이다.
한 달 12만원 사글세로 버티다 아들이 태어날 무렵, 드디어 빌라 전세를 얻었다.
내 생애 처음 만져본 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혹여나 잃어버릴까 돈 뭉치를 품에 꼭 안고 부동산으로 향하던 그 봄날의 따스함을 나는 아직도 눈에 선하게 기억한다.
사람들은 주말부부라고 하면 외롭지 않냐며 연민 섞인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알겠다. 떨어져 지내며 잃은 것보다 의외로 지켜낸 현실적인 것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첫째는 역시 돈이다. 주말부부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그래서 생활이 철저히 계산적이 된다. 매일 마주하며 생기는 잦은 외식이나 감정 소모 뒤에 따르는 보상성 지출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두 집 살림이라는 구조적 부담은 있었지만, 불필요하게 새나가는 돈은 분명 적었다. 부자가 되진 못해도, 덜 흔들리는 생활비를 지켜낸 셈이다.
둘째는 사랑의 유지다. 솔직히 말해 사랑이 더 뜨거워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급하게 식지도 않았다. 매일 부딪히며 소모되는 감정 대신, 기다림과 인내라는 새로운 형태의 타협이 자리 잡았다. 덕분에 사랑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상태'가 되었다.
셋째는 끈끈한 전우애다. 우리에게 로맨스는 사치였다. 서로가 어떤 전장에서 하루를 버티고 있는지 알기에 상대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게 된다. 연인이 아닌 같은 목표를 향해 뛰는 '팀'에 가까워지는 것은 주말부부만이 갖게 되는 관계의 형태다.
마지막으로 돌이켜보면 그 시간 속에서 혼자 버티는 법을 배웠다. 혼자 결정하고, 책임지고, 또 혼자서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 속에서 사람은 의외로 단단해진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도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줄 아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관계가 흔들린다고 해서 내 삶의 뿌리까지 통째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근육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현실적인 자산이 되었다.
주말부부의 이득으로 '사랑을 키웠다'는 미화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서로의 삶을 망치지 않으면서 각자의 자리를 지켜낸 시간이었다.
그 시절이 없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은 꼭 붙어 있지 않아서 우리의 관계는 유지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