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 공부

단어

마음의 상처를 입히는 말

by 길윤웅

사람들이 바쁘다.


사람들의 입과 손이 바쁘다. 내 귀가 '소머즈'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거친 단어들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도청 본능'이 있어서 그런 건지. 사람을 비난하고 상대를 압박하고, 기죽게 만드는 거친 목소리들.

심리적 압박 없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은 먼 나라 이야기일까. 지인을 만나 그 자리에 없는 다른 누군가를 이야기할 때 나는 제대로 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제대로, 잘, 좋게 표현을 하는 게 더 많은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밑밥

"밑밥을 깔자고, 그 인간 그러면 물 거야." 조선족 아주머니의 말투다.

을지로3가역 2호선 환승역 구간으로 들어선 아주머니는 무슨 일을 꾸미시려고 밑밥을 던진다는 걸까. 어떤 피해를 당하셨길래 역으로 상대방을 같은 수법으로 당하게하시려고 하는 건지. 억울함이 얼마나 크시길래 밑밥을 까시는 건지. 무슨 밑밥인지 궁금하지만 여기까지.


#지랄

"지랄하고 있네."

누구를 욕하는 건지, 아주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지랄에 무척이나 힘이 들어갔다. 지랄의 대상자가 궁금하다. 어떻게 해서 그런 소리를 듣는지 말이다.

*지랄 [명사] 1.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


#미친

이제 이런 말들은 거의 일상적인 말이 된 듯하다. 세상이 미쳐돌아가니 미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노릇인듯 하다.


#에라

좌석버스 안. 건너편 아주머니 한 분이 이자를 내지 못해 쩔쩔매는 친구한테 이자 15만 원을 어떻게 해서든 보내라고 다그친다.


"있는 대로 다 훑어서 보내"라고. 보내주기로 해놓고서는 보내주지 않은 사람에게 어떻게든 맞춰서 보내라고 재촉한다. 자기가 제일로 싫어하는 사람이 돈이 급할 때 남의 돈 갖다 써놓고서는 모른 채 하는 인간이라고.

"에라."

"버스 안이라고 긴 통화는 못한다."라고 하면서도 내내 할 이야기 다하고 만다. 은행 문 닫기 1시간 전이다. 이자는 제대로 보내줬을지 모르겠다. 그런 비난을 받으면서도까지도 15만 원을 끌어다 주지 못한 사람은 어떤 사정이 있는 걸까.


#멸종 예상 단어

우리 말 중 예쁘고 좋은 말들이 참 많다고 하는데 사실 잘 쓰지를 못한다.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단어들.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도 제대로 감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서로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행복해, 사랑해, 고마워, 애썼다, 네가 제일이다, 자랑스럽다, 기쁘다...."


이런 말은 언제나 해 본 건지.


그나저나, 대학 3학년 때 해외연수간다고 선뜻 내게 여비에 쓰라고 돈을 빌려주신 형님 한 분이 계시는데 매달 조금씩 돈을 넣어보내겠다고 했었다. 몇 달 그렇게 보내다가 무슨 일로다 채 다 갚지 못했다. 아직 남아 있는 돈이 있다. 그 돈 돌려주겠다고 은행에 따로 통장 만들어서 넣어두었는데 형님 연락이 안 된다. 형님, 어디 계세요? 에라.


"인간이 아닌 동물은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살아도 거의 삶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인간만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위약한 육체를 보강하기 위해 어중간한 지혜를 달고 다니는 탓에 악질적으로 변해 갔다. 욕망에 따라 살았으며 그 행위 대부분은 추악했고 수많은 죄악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억제와 통제가 불가결하게 되어 법률과 도덕과 종교가 출현한 것이다. 그런데 법률과 도덕과 종교 또한 욕망으로 물들고 얼룩져,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강적이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192페이지, '나는 길들지 않는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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