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이동권 보장 시위를 바라보며
시청역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휠체어에 몸을 실은 장애우들이 버스를 막았다. 오전부터 운행을 하려던 차는 오후가 늦도록 출발하지 못했다. 2층 버스는 운행을 개시한 후 1주 일 정도가 지나 이렇게 멈췄다. 장애우들은 경기도가 장애우들을 위해 시외구간으로 버스 이동을 자유롭게 해 달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상황을 맞아 관계기관과 협의를 하는 것이 오래 걸리자, 오후에는 다른 버스도 한 대 더 막아섰다.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 중 한 사람은 버스를 가게 해달라고 했다. 왜 막고 있냐고 그러면서 가야 한다고 말을 덧붙였다. 경찰 관계자도 이 차는 보내주자고, 사람들이 타고 있으니 보재주라고 말을 했지만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의 입장은 달랐다.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로 나선다는 것은 그러한 일이다.
사실, '이동권'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그러한 처지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러한 말의 의미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한다.
공공건물을 비롯하여 시설물, 학교 내에는 장애우들의 이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있다. 법으로 그러한 시설물을 설치하도록, 또한 오래된 건물들도 거기에 맞출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휠체어가 통과할 수 있는 폭의 경사로를 만들도록 했다. 아파트에도 그러한 길이 하나 더 나있다.
몇 년 전, 일본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 오다야바라는 곳에서 한 전시장을 방문했다. 그때 나는 그 한쪽에 전시된 유니버설 디자인을 눈여겨 봤다. 차량을 비롯, 가정 내, 시설물 내 손잡이 등 장애우들의 이동과 활동을 편리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상인들과 노약자들에게도 보편적으로 편리한 장치들을 선보인 것이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한 상황들을 접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기업들은 몇몇을 위해 그러한 장치들을 마련하는 것에 대해서 인색한 것이 현실이다.
저상버스가 국내에 도입된 후 운영이 되고 있지만 아침 출퇴근은 물론 오후 시간대에도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차 후 휠체어를 싣기 위해서는 몇 분의 시간이 소요되고, 내부 공간도 제대로 확보가 되지 못한다. 승차 후 원활하게 휠체어를 돌려야 하지만 그러한 공간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한다. 이미 탄 승객들의 표정은 어떤가.
이날 오후, 길을 가다 멈추고 한 참을 바라봤다. 우리 스스로 이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정말 이상이 없는 것인지 하고 말이다. 다른 한쪽에서 불편한 것들,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있어야 할지 말이다.
‘인클루시브 디자인(Inclusive Design)’이 필요한 이유다. 이 디자인은 장애인,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디자인을 말한다. 북유럽에서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 미국·일본 등에서는 ‘보편적인 디자인(Universal Design)’, 영국에서는 인클루시브 디자인으로 불리는데, 조금씩 다른 개념이다. 가령, 인클루시브 디자인의 관점은 유니버설 디자인 관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장애인까지 포함해 ‘누구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기에 외향적인 아름다움, 기능적인 디자인과 함께 커뮤니케이션이나 서비스까지 포함한다. 물론 ‘누구나를 위한 제품’이 ‘누구나도 아닌 제품’이 될 위험성도 있다.
-약업신문 인터넷판 2015년 10월 29일 기사 중 일부 발췌
http://www.yakup.com/news/index.html?mode=view&cat=15&nid=190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