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판의 재활용
사람들의 능력은 같은 물건을 어떻게 쓰는 가에 달려 있다. 용도가 다 끝난 것들을 버리지 않고 나름대로 쓸 곳을 찾아서 갖다 놓는다. 시장통에서나 좁은 가게에서 쓰는 등받이 없는 원통의자를 버렸었다. 엉덩이 받침 부분이 밑으로 빠져 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을 옆 집에서 가져가서는 그 둥그런 원형의 홈에 화분을 얹혀 놓았다. 멋진 화분 받침대가 되었다. 다시 갖고 오고 싶었지만 어쩌랴.
자전거보관대에 놓인 것도 아닌 자전거 한 대의 뒷자리가 녹이 스러보여서 이상했다. 뭐지, 밖에 오랫동안 세워놓아서 그런것인가 싶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니다. 고기굽픈 석쇠판이 아닌가. 오, 이런. 융합과 통섭이 이루어지는 현장이 아닌가. 사람이 앉는 모습을 보지 않았으니 얼마나 잘 견뎌낼지는 모르겠다. 기본 사이즈로 나오는 뒤의자받침대가 얼마나 튼튼하겠냐먄 이렇게 고기 굽는 석쇠를 얹혀놓았으니 엉덩이(?) 하나는 잘 익겠다.
후배 하나는 국립공원이나 산에서 나오는 잔가지들을 모아서 나무장난감을 만든다. 개인이 임의대로 쓸 수 없는 나라의 재산이니 어떤 형태로 갖고 왔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사회적기업으로서 그같이 버려지는 것들, 혹은 용도를 찾지 못한 것들을 가져다가 유익한 곳에 쓰고 거기에서 나온 기금 중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시스템이니 그같은 취지를 받아주어 일이 만들어진 것이라 본다.
전봇대에 놓인 책상이 탐이 났다. 저거 가져다가 페인트칠 하고 헐렁한 곳 다시 드라이버로 조여주고 못질하면 깨끗하게 뭐라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말이다. 그렇지만 당장 저것을 가져다가 칠하고 조이고 할 생각을 하니 선뜻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거 할려면 다시 하나 사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이니 말이다. 지구환경 보호 한다고 말을 하고, 그같은 활동에 마음을 보내면서도 정작 실천하는 곳에는 마음을 보내지 않는다.
디자인은 새로운 창조도 있지만 재활용과 재구성의 능력에서도 차이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