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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윤웅 Dec 06. 2018

떠난 자가, 남은 자에게 묻는다, "당신, 왜 사냐고"

산문집, <김진영의 애도 일기-아침의 피아노>

더 오래 살아야 하는 건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미루었던 일들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아니라면 애써 이 불가능한 삶과의 투쟁이 무슨 소용인가?”

-72, <김진영의 애도 일기-아침의 피아노>      


산문집, <김진영의 애도 일기-아침의 피아노>는 2017년 7월 시작해서 2018년 8월에 끝난다. ‘235’ 번은 없다. 세상과 이별하기 1년 전, 김진영이 발견한 간암은 희망과 달리 그의 몸을 떠나지 않았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병에 대한 면역력이며 사랑, 그것이 곧 정신력이라는 글을 남기며 투쟁했지만, 간암을 이기지 못했다. 그의 글도 ‘234’에서 멈췄다.      


아침 베란다에서 ‘파란색 희망 버스’를 볼 수 없는 김진영은 희망을 걸며 병과 싸우는 동안 그가 발견한 것은 사랑이다. 철학자로서 사회 구조의 현실을 비판해온 김진영은 철학과 미학을 주제로 강의하고 글을 썼다. 앞으로 더 나아갈 길을 만들지 못했다.     


속상함과 원망, 미련이 남을 법할 텐데 그는 하강하는 자신의 몸을 떠나지 않는 병을 달랬다. <김진영의 애도 일기-아침의 피아노>는 간결하지만 무겁다. 이내 무거움을 떨어트리고 잔잔하게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얼마 전, 뉴스에서 임대주택 주민들의 통행을 금지하는 아파트 주민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통행을 막은 이유를 들어보니 집값 하락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같은 단지 내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주차장 진입을 막고, 다른 길로 다니라고 하는 주민들의 생각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아파트의 형식과 규모에 따라 차별받는 새로운 계급사회에 산다.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사는 일은 마치 게임 속 전투원들과 같은 삶이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방어’하고 ‘진지’를 구축해 나갈 뿐이다.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것들을 제거해나가는 것만이 안전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김진영은 생(生)을 ‘쌍곡선 운동’이라고 표현했다. 상승과 하강이 인생이라는 것. 하강하는 삶의 순간에서 상승을 생각하며, 그 순간에 ‘새의 날개가 되어 기쁨의 바람을 타고 떠오르겠다’라고 말한다.     


며칠 째 계속되는 하강, 그러나 생은 쌍곡선 운동이다. 어딘가에서 하강할 때 또 어딘가에서는 상승한다. 변곡점이 곧 다가오리라. 거기서 나는 새의 날개가 되어 기쁨의 바람을 타고 떠오를 것이다.”-262, <김진영의 애도 일기-아침의 피아노>      


내 것을 가지겠다고 타인의 길을 막는 이웃 주민들의 삶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떠 올려야 할까? 올라가는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가 있다. 그게 인생이다. 시작은 달라도 끝은 다르지 않다.      

임종을 앞둔 며칠 전 김진영은 이렇게 하루를 기록했다.     


사랑의 마음,

감사의 마음,

겸손의 마음,

아름다움의 마음.

-274, <김진영의 애도 일기-아침의 피아노>      


세상을 향한 김진영의 마지막 인사를 읽으며, 내 삶의 하루를 돌아본다. 시간과 장소는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내려놓고 가야 할 순간을 모두 맞는다.      


지금 살아서 좋은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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