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에세이 2019년 3월호, '이 달의 에세이'
지하철을 기다리며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결국 꺼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이동 중에는 안 만지려고 해도 자제력 부족 탓인지 기어코 손에 쥐고 만다. 비슷한 자세로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사람들과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게 쉽지 않다.
부재중 전화 알림이 있다. 7~8년간 우리에게 일을 맡겼던 담당자다. 안 그래도 궁금해했다. 일을 시작할 때가 지났다. 먼저 연락을 해보려고 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까 싶어 기다렸다. 나는 그 전화라고 생각했다.
“전화했는데 안 받으시더라고요?”
“아, 네. 잘 지내시죠?”
“네. 부장님, 다름이 아니라요......”
느낌이 그런데 이상하다. 말끝은 내려가고 흐려진다.
“우리도 하던 곳이 있어서 부장님네랑 하겠다고 했는데 예산지원을 하는 구청 담당자가 자기들이 거래하는 업체가 있어서 거기랑 하겠다고 합니다.”
말인즉, 우리와는 거래를 끊겠다는 통보 전화다.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 까치 우는 소리를 들었다.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다, 더 울어라, 까치야.’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까치 소리는 내가 기다리던 소식이 아니다.
나는 일을 맡을 때가 있으면, 일을 잃을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를 놓치면 또 하나 생기겠지.’ 하는 괜한 믿음을 허전한 마음속에 밀어 넣는다. 막상 그런 상황을 마주하면, 끈 하나가 떨어져 나간 기분이다. 잠깐 하는 일이 아니라 몇 년 동안 해 온 곳은 더 그렇다. 내가 뭔가 잘못해서 그런가, 아니면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해서 그런 건가, 서운하게 한 게 있나 싶은 생각이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담당자도 미안해하니 뭐 내가 잘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위로를 하지만 실망감은 좀처럼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실무를 맡은 담당자의 결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더 큰 힘으로 일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일이 끊어진다. 그러다 보니 힘을 키우지 않을 수 없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규모를 늘리지 않을 수 없다. 더 높은 사람을 찾고 있는 인연 없는 인연을 끌어다가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대화 속에서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한다. 마치 내가 ‘높은 분’을 잘 아는 사람처럼 말이다. 상대방은 나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잊은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첫 직장생활 때 같은 직장에 근무했던 선배 한 분이 지금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아는 곳의 대표이사가 되었다. 어느 날, 후배가 선배에게 자기가 만든 서비스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해왔다. 내가 은연중에 그 선배를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일을 하나 얻기 위해 있는 인연 없는 인연을 다 가져다 맞춰본다. 사람을 뽑는 일도 그렇다. 공정한 사회를 겉으로 외치면서도 뒤로는 그런 인연을 찾는 데 시간을 보낸다.
‘우리가 해 온 일을 가져가는 업체는 무슨 인연으로 일을 가져갈까.’ 아직 내 마음의 서운함이 가시지 않는다. ‘잃을 때가 있으면 얻을 때가 있다’, 그렇게 오늘 다짐하면서도 말이다. 앞으로의 일은 인연으로 일을 얻는데 마음 쓰지 않고, 스스로 일을 만들고 끝맺을 수 있는 자립에 마음 두고 살아갈 일이다.
<공각기동대>를 제작한 일본 영화감독 오시이 마모루는 자신의 책, <철학이라 할 만한 것>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파악하는 일, 이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계속 일하지 못하게 된 이유, 더 큰 힘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데 힘을 낭비하기보다 인연이 시작되면 또 끝날 때가 있다는 것을 첫째 마음에 담고 산다면 그런 서운함은 천천히 소멸할 것이다.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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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월간 에세이 2019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