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윤웅 Feb 23. 2022

제대로 사과하는 방법

책으로 만나는 세상

문서 정리 중 퇴사를 앞둔 직원이 내게 남긴 이메일 문서를 발견했다. 내 잘못을 언급하고 있다. 이메일에는 나로 인해서 또 다른 누군가가 그만두는데 왜 “그것을 모르냐”라는 감정 섞인 문장이 들어 있다.  


나는 왜 이 이메일을 출력해서 갖고 있었던 걸까. 풀지 못한 의문 때문이었나. 어떻게 회신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그에게 그때 그만둔 게 나로 인해서 그런 것인지 알고 싶다. 내가 아는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그에게 기억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사과하고 싶다.


최근 언론을 통해 사과 기자회견을 지켜봤다. 사과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왜 우리는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도 받지도 못하는 걸까. 신문 지면에 여러 기업의 사과문이 실려서 내용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본 적이 있다. 급작스러운 상황 속 만들어진 사과문이라고는 하지만 ‘핵심’은 들어있지 않았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사고 뒤에는 사과문이 발표되고 사과 회견이 잇따른다. 사과문을 발표한 사람은 질문과 답변 없이 그 자리를 떠난다. 지면에 실린 사과문으로 도리를 다한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정치인 사과 기자회견을 보면 진정한 사과로 느낄 수 있는가.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쓴 문장을 읽는 사과에는 진정성 빠졌다. 국감장에서 막말한 국회의원 사과는 평소 어법처럼 사과문도 다르지 않았다. 사과문에 담겨야 할 사과의 주체, 대상은 물론이거니와 어떤 행위로 인해 피해를 보게 한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대중이 익히 알고 있다고 판단했을지언정 본인의 입을 통해서 밝히는 것이 옳다고 본다


문제 해결 방안과 피해 보상 내용도 담겨야 한다. 그런 내용이 실린 사과문을 본 적이 있나. 사과 형식을 따른 ‘면피용 행사’이다. 당장 급한 불을 껐다고 생각하겠지만, 불씨가 남아 언제 더 큰 불을 일으킬지 모른다.


작업 현장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업체 대표가 사고 직후 사과문 발표하고 대책 방안도 내지만,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된다. 왜 그럴까.   


진심을 읽을 수 없는 문장으로 채워진 사과는 오히려 조롱의 대상이 된다. 단순히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는다고 해서 사과가 되는 게 아니다. 불편해할 대상이 국민이 아니라 피해 당사자이지만 그 부분을 언급하지 않는다. 직접 피해를 본 사람을 위한 피해보상 방안이 있어야 한다.


한 그룹 회장은, 자식의 행동에 대한 국민 여론이 끓고 나서야 사과 기자회견을 하면서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한다”라고 말했다. 여기에서도 자식의 행동으로 인해 피해를 본 당사자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한 그룹 회장은 청문회장에서 국회의원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질문을 마치고 자리에 돌아가서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웃기도 했다.



직장 후배였던 그를 다시 보면 그때 일을 묻고,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사과하고 싶다. 사표를 낸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 잘못한 부분은 사과하고 오해였다면 풀어도 보고 싶다. 늦었지만, 그래도. 그게 인생이니까.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언제고 다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거짓으로 사과하는 이들은 진정한 사과에 요구되는 과정을 제대로 밟으려 하지 않는다. 자기 잘못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거나, 진정으로 후회하고 있음을 상대에게 표현하지 않으며, 앞으로 달라지겠다는 약속을 포함한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 세 가지 행동은 유효한 사과를 위해 필요한 값이다. 이를 실천에 옮기려면 정직, 관용, 겸손, 헌신, 용기, 희생 등이 요구된다. 달리 말하면, 효과적인 사과의 보상은 결코 훔칠 수 없는 것이다.”

-25쪽, 아론 라자르의 <사과에 대하여> 중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