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근처의 막다른 흡연골목.
그곳에서 서 있었는데 한 남자가 내 근처를 오가며 힐끗힐끗 쳐다보고 뭔가 불안해 보였어요.
주변을 보니 나 혼자 여자였고요.
그때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어요.
대낮에도, 사람 많은 곳에서도 여자들이 이유 없이 공격당하는 사건들.
길거리에서 벌어진 퍽치기, 칼치기, 묻지마 범죄, 살인 예고까지.
이제는 아무리 환한 곳이라도,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이라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공포는 불쑥 찾아왔죠.
그 남자의 불안한 동작 하나하나가 내 머릿속에선 위험 신호라고 알려줬습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뛰었죠. 뒤돌아보지 않고.
과잉 반응일까? 아니면 내가 이 시대,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체득한 자기 방어일까?
아무도 내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았지만, 힐끗거림과 서성거림만으로도 나는 본능적으로 그 순간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길거리에서 느껴야 할 자유가 아니라, 이유 없는 공포를 마주해야 하는 이 감정.
사회에 나오자마자 이런 공포분위기를 겪고 있을 젊은 여성들은 더 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부 여자 화장실도, 엘리베이터도, 지하 주차장도, 이젠 대낮 길거리에서도 안심할 수 없는 게 현실이 돼버린 시대
안전해야 할 곳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길거리, 화장실, 심지어 학교까지.
그 젊은 여자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를 만든 기성세대라서 많이 미안해진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젊었을 때보다 더 지뢰밭이 된 이 땅에 내 지분도 있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습니다.